잠이 막 들은 것 같은데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밤 12시 35분이다. 벨 소리만으로도 슬픔이 몰려 온다. 위급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다. 중환자실에 있는 장모님이 위급하다는 것이다.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하기에 약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빨리 오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옷을 대충 입고
집사람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도착하기 몇 분전인 1시 3분에 운명하셨다고 한다. 이마를 짚어
보고 손을 만지며 "장모님!"이라고 불렀다. 집사람의 울음소리가 중환자실을 꽉 채운다.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돌아가신 모습이 편안하다.
지난 하루 동안 내가 보낸 시간이 후회된다.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이 배가 몹씨 아프다고 하여 집사람이
아침 일찍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각종 검사를 하였던 모양이다. 거의 하루종일 걸려서 검사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가는 것을 본 다음 저녁 늦게 집사람은 집에 돌아왔다. 이런저런 말도 나누었다고 해서 좀 더
사실 줄 알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나도 병원에 따라 갔을텐데 말이다. 장모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있었는데 결국 임종도 보지 못하고 떠나 보내고 말았다.
장모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아무 걱정말라는 말이었다. 아들, 딸 모두 자기 몫을 하며 잘 살 것이고, 누구
보다도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이 장모님 유전자를 받아 모두 잘 생긴 얼굴로 잘 자랐으니 아무 걱정
말고 하늘이 부르면 평안하게 가시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날(9. 1.) 아침 일찍 빈소를 차리고 절을 올린 다음 부의록 맨 앞장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상중에 있었던 일로 에피소드 하나만 간단하게 쓰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부의금 봉투를 정리하는 중에 한 봉투에서 일백만원이 담긴 봉투가 있었다. 가장 많은 금액이다. 어떤 직원
일동 등으로 낸 금액보다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냈는지 낸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한자로 부의(賻儀)라고 쓰려고 했던 것 같다. 필체로 봐서 글씨를 잘 못 쓰는 사람이 글씨 모양을 그려
놓은 꼴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한자를 잘 모르는 어린이가 글자 모양을 보고 정성스럽게 그린 것 같다.
여하튼 문제는 누가 냈느냐이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이 정도의 금액을 낼 정도이면 아주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혹시 "동네 노인정의 장모님 애인일까?" 아니면
"장모님의 숨겨 논 자식일까?"등의 엉뚱한 상상도 해 보았다.
나중에 당사자가 밝혀지긴 했지만, 약 1시간여에 걸쳐 수소문하면서 상중에 잠시 황당했던 일이 생각나 그
봉투 사진을 올려 본다. 궁금한 것은 나중에 나의 수필을 통해 밝히기로 하고 이 글은 이만 마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