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일간의 행복(중)

헤스톤 2016. 3. 2. 09:34


페북에서 프로필을 보면 나의 나이 정도는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묻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도 당신과

비슷한 30대의 나이라고 하거나 40대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거짓말은 나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먹은 나이에 대하여 별 불만없이 살았는데 갑자기 왜 내 나이의 숫자가 부정적으로 다가

왔는지 모르겠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현실적으로 내가 이 나이에 미국의

여군과 무슨 연애를 할 것도 아닌데 나이를 밝히는 것이 왜 그렇게 껄끄러웠을까. 그냥 단순히 페북 친구

라고 여기면 아무 것도 아닌데 갑자기 특별한 사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당신보다 스무살 이상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자라는 동물이전에 인간인 나는 당당하게 결혼도 했고

아들도 있으며 내 아들은 지금 아주 좋은 나이인 20대 후반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신의 가족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답변이 온다.

'Am single. I lost my husband 3 years ago to a car accident. I have 2 daughters Jen** 5 and A**7.'

3년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지금 7살과 5살된 딸 둘이 있다고 한다.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 일반적

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사용하였고, 그녀의 딸과 관련된 대화를 하였다. 메시지를 여러 번 주고 받다 보니

내용이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만 대화에서 빠져 나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평소 사용하지 않던

단어를 사용한 탓인지 시간이 가면서 내 영어실력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이 되었을 때 그녀가 먼저 이제

순찰(patrol)돌러 가야 될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대화하자고 하면서 키스(kiss)와

허그(hug)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하트 표시를 보낸다. 나로서는 땡큐다. 아니 땡큐 쏘 마치다.


 

 

페북 친구를 맺은지 3일째 되는 날 오후이다. 어쩜 나는 오전부터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었지만 나는 별로 관심없는 척 시간을 쌓고 있었다. 지금 대화가 가능하냐고

하기에 괜찮다고 하였다.

한글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빠르다고 할 수 없는 내가 영어로 문자를 계속 이어가려니 힘들다. 그래서 

'I feel nervous using English.'라고 하였더니 'lol','You write English very well my friend.'이라고 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더니 'No not at all.','Trust me your

English is perfect.'라고 한다.

그리고 'Am so happy to have you as a friend on here.'라고 하면서 특별한 관계로 지내며 어떤 것에

대하여 논의하고 싶다고 한다. 괜히 가슴이 뛴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바른 생활을 지향하는 나는

그냥 페북친구로 지내길 원한다고 답장하였다. 그리고 업무시간이기도 했고 실제로도 바빠서 나중에

대화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또 대화가 가능하냐고 메시지가 뜬다. 당시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더니 수시로 무슨 안달이 난 사람처럼 'Are you there?'라고 물어 본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 오른 것 같다. 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좋다고 한다. 

무엇때문에 내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그동안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나의 교양과 인품(?)을 보고

아무래도 이 여자가 나에게 홀딱 반한 것 같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연락주겠다고 하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녀가 보내 준 단어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급한 일을 정리한 몇 시간뒤 '힘든 군 생활을 하면서 딸들도 잘 키우고 있는 당신같은 사람과 페북 친구가

된 것이 좋다'고 하면서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금방 답장이 온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수준 높은

사람과 친구가 되어 너무 행복하다'는 의례적인 말이나 좀 더 농도(?)가 있는 말들이 촘촘히 박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보내온 글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그동안 들떴던 마음이 팍 가라

앉는다.

 


- 사진은 말러 임성환님의 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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