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입은 팬티를 보니 좀 이상하다. 남자 팬티다.
눈에 익은 것이라고 하면서 자세히 보니 내가 입던 것이다.
"왜 내 팬티를 입었어?"
"당신이 작아서 입지 못한다고 팽개쳐 놓았기에 입었지."
"앞에 터져 있는 것은 어찌하고?"
"희한하게 그게 많이 거슬려서 집에 있는 손봉틀로 막았어."
앞은 바느질로 막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입던 팬티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색하다. 한번밖에
입지 않은 팬티이긴 하지만 보는 내가 불편하다. 언젠가 한번 입고 빨았더니 크기가 줄었는지 내가 입기
에는 꽉 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지 않았더니 버리기 아깝다며 아내가 입고 있는 것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것을 입고 필드에서 골프를 친 다음 샤워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른 여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안 쳐다봐?"
"다 쳐다 보긴 하지만 무슨 상관있어. 지들 남편 것도 아니고 내 남편 것인데 뭐~"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집에서만 입는 것도 어색한데, 그것을 입고
남들한테 보여주기까지 했다니 내가 화끈거린다.
아내는 과거에도 내가 입던 옷과 관련하여 전력이 있다.
대개 무슨 체육대회나 등산 혹은 야유회때 단체로 구입하여 입는 티셔츠나 후드티 등은 행사 당일에만 입고
잘 입지 않게 된다. 당일 한번 입고 빨아서는 계속 장롱에 처박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이 아내의
사냥감(?)이다.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도 내가 입지 않으면 그것을 아내가 입는다.
지난달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집 부부와 골프치러 갔을 때 아내가 겉옷으로 입은 겨울용 티셔츠도 내가
한번 입고 장롱에 처박아 두었던 것이다.
"아니 왜 내 옷을 입었어?"
"당신이 거들떠 보지도 않기에 입었는데, 엄청 따뜻하고 좋아!"
괜히 이웃집 부부에게 민망해진다. 아무래도 아내가 입기엔 좀 헐렁하다. 그래도 아주 보기 싫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작년에 아내가 입었던 나의 털스웨터는 너무 크기에 입지 말라고 하였다. 혹시라도 그것을 입고 밖에 돌아
다닐까봐 불안하여 내가 간혹 꺼내 입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어쩌다라도 입는 것은 사냥감이 아니기 때문
이다. 물론 내가 안 입는 모든 것이 사냥감은 아니다. 사냥감에서 일단 하의는 제외되고 상의 중에서도
너무 남자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입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아내도 나를 닮은 탓인지 옷을 사 입는데
인색하다. 바자회 같은 곳에서 구입한 것과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동생한테서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맨 왼쪽의 집사람이 상의로 걸치고 있는 티셔츠는 내가 한번 입고 처박아 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입고 사진
까지 찍다니 웃음이 나온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거의 다 아는 분들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옷을 거의 사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고등학교 다닐 때 궁상맞게 입었던 교복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시 부모님에게 말해서 교복 한벌 맞춰달라고 했으면 우리집이 그것도 못해줄 정도는 아니
었는데 나는 중학교 3학년때 맞췄던 교복을 고등학교 3년동안 입었다.
내가 입은 교복은 천이 좋지 않아 살짝 빨기만 해도 하얗게 물이 바랜 것이었다. 그런 교복을 입고 다닌
학생은 전교에서 나를 포함하여 2명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항상 돈에 쪼들렸던 부모님 생각에 나 스스로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것 같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나는 부모님의 형편을 생각해서 집에서
돈을 갖다 쓰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살았다. 소풍갈 때 김밥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 적도 없다. 부담을
줄까봐 아예 소풍같은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바보같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어려서부터 장남의 굴레를 쓰고 집안 형편을 너무 생각하며 살았던 것같다. 부모님의 무관심을 유도하며
그냥 나를 괴롭히며 살았다.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면접을 볼 때 재학생들은 되도록이면 교복을 입고 면접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여
친구한테 빌려 입었다. 물도 빠지고 몸에 맞지 않게 작은 교복을 입기가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교복 좀 빌려 달라고 말하던 나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다가온다.
내가 어렸을 때 대개 동생은 형의 옷을 물려 입는 것이 대부분의 집들에서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내 밑의
남동생이 내 옷을 물려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신 나는 누나가 입던 바지를 물려 입고 밖에 나가서
놀다가 엉덩이가 펑퍼짐한 옷이라고 동네 아저씨로부터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옷도 사달라고 졸라야 새옷이 생길텐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은 울지 않는 나에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러 형편상 옷을
제대로 사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러 모른체 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학생시절을 보내며 옷과 관련하여 한이 맺힌 탓일 것이다. 은행에 취직하여 돈을 벌게 되면서 나는
옷을 자주 사 입었다. 당시 충무로에 있는 양복점에서 철이 바뀔 때마다 양복도 맞춰 입었다. 구두나 가방도
샀다. 행원시절 옷을 가장 잘 입는 직원이 되었다. 당시 구두닦는 아저씨가 말하길 자기가 닦는 구두중에서
내 구두가 제일 비싼 것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렇게 약 1년동안 화풀이를 하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었다. 서서히 입지 않게 되는 옷도 많아지고 싫증이 났다. 그 뒤로 나는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언제나 근검
절약을 바탕에 깔고 옷을 잘 사 입지 않는 나로 살았다.
간혹 옷도 주기적으로 사 입어야 경제에 보탬이 될텐데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옷 장사들이 다 망했을지도
모른다. 적정한 소비가 없다면 경제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대개 나이를 먹을수록 옷도 사 입지 않게
된다고들 하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늙어갈수록 사야 되는 것이 옷이다. 왜냐하면 젊을 때는
아무것이나 입어도 어울리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잘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나와 아내를 돌아보니 별 수 없다. 간혹 사 입자고 하면서도 오래된 옷이나 들척거리고 있다.
이런 나를 아내는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궁상 좀 그만 떨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 팬티를 입고
있다.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오늘은 큰 맘 먹고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당연히 아내 속옷도 사 주고 겉옷도 하나 사 줄 것이다.
기왕이면 제일 멋있고 비싼 것으로 사 주리라.
(지난 달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자바베카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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