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 금대산에서

헤스톤 2014. 11. 11. 14:36

 

집앞으로 월문천을 건너 금대산이 있다. 높이는 100m도 안되는 아주 낮은 산이다.

그냥 옆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능선을 따라 가볍게 걸으면 된다. 등산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으로 산책하기 적당하다. 

무슨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한다는 것 보다는 그냥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기는 그만이다. 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면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이 운동시설이 좌우에 있고

약수터도 있으며 금대산 입구가 나온다.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몇 계단 되지도 않는다. 힘도 들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금방 올라간다.

계단이 그리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흙들이 많이 패어 있어 보수가 필요한 것 같다.  

계단을 따라 좀 더 올라간다. 조금만 가면 정상이다. 사실 정상이라고 할 것도 없다. 

높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고향 뒷동산 정도도 안되는 것 같다. 어찌보면 산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갑자기 연령별로 여자를 비유하는 산이 생각나 혼자 빙그레 웃어본다. 뒷동산은 60대이다.

10대 하고 70대가 제일 웃긴다. 10대는 금강산이라 함부로 올라갈 수도 없고, 허가를 받아야 되고, 잘 못 올라갔다가는

총 맞아 죽는다고..70대는 에베레스트산으로 여간해서 올라가서도 안되고 올라갈 수도 없지만 올라갔다가는 살아서

내려오기 힘들다고.. 20대는 설악산..30대는 지리산..40대는 북한산..50대는 남산..80대는 북망산이라고 하는데..

설명은 나의 품격상 생략하겠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좋은 시상이라도 떠 오르면 좋으련만 엉뚱한 것들만 머리를 굴러 다닌다.

다음주에 있을 아파트 동대표회의에서 갑론을박이 예상되는 몇 가지 안건이 뱅뱅 돈다.

이런 것을 생각하려고 이 곳에 온 것이 아닌데.. 자신의 기술적인 지식을 뽐내면서 핏대를 올릴 몇 사람의 얼굴이

떠 오른다. 에~이..이런 제기랄..

가을하늘은 참으로 맑고 곱다. 하늘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본다.

나무들도 기분좋게 웃는다. 꽃들은 언제 봐도 예쁘다.

산을 내려와 산책하던 산을 보니 또 다른 모습이다. 올라갈 때는 잘 보이지 않던 풍경이다.

그 산이 그 산인데 왜 달라 보이는 걸까? 벌써 그 만큼 시간이 흐른 탓일까..보는 눈이 달라진 탓일까..

가을이 더 가면 겨울이 올 것이다. 나는 이 계절에 머물고 싶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산도 변하겠지만 내 길을 갈 것이다. 알차게 익어야 한다.

내 인생에 겨울이 와도 정도(正道)를 걸어 갈 것이다.

 

이 산을 걸으며 다듬었던 글을 옮겨 본다.  

 

 

     金大山行(금대산행) 

                                            濟南 朴 炯

 

 

산책길로 안성맞춤인 동서로 낮고 길게 뻗어 있는 산

마른가지에 입 맞추고 낙엽을 땅 속으로 밀어 넣으며

가다 서고 가다 앉고 가다 하늘에 미소지으면

시간이 쌓이고 또 쌓이며 해가 서쪽으로 달려간다 

 

매일 세수한 새들이 구름을 가르고 소리를 지배하는 산 

큰 몸집을 자랑하는 이웃들로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산    

크기는 작지만 계곡물이 큰소리로 합창하니

햇살이 얼고 찬 바람이 몰아쳐도 가을이 익어간다  

가을산이 뚜벅뚜벅 제 갈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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