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일기를 열심히 쓴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하기전까지
만 해도 일주일에 한번씩 끄적거리곤 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의 일기장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남아있는 것으로
는 군대 제대이후의 것만 남아있다.
오래된 일기장을 정리하다보니 빛 바랜 원고지들도 나온다. 참으로 오래된 것이다. 정말 오래된 것이다. 좋은 글인지
아닌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예전에는 무슨 글을 쓸 때 꼭 원고지를 이용했던 것 같다. 아래의 "호박꽃"이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6매에 걸쳐 쓴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이다. "1632"라는 것은 내가 1학년6반 32번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다.
백합이나 난초를 도시의 어느 부잣집 처녀라고 한다면 호박꽃은 일하느라고 구리빛으로 변한 건강한 신체의 시골집
처녀라고 할 수 있다. 백합이나 난초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화려하게만 피어있는 꽃이고, 호박꽃은 열매를 맺게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모성의 꽃이다.
당시 여름방학때 시골집 담장에서 꽃 밑에 호박을 달고 호박을 키우면서 시들어 가다가 툭 떨어지는 호박꽃을 보고 글
을 쓴 것이다. 지금 읽어보니 간지럽다.
아래의 "눈물나는군"이라고 쓴 글은 역시 고등학교 1학년때 쓴 글로 원고지 12매로 이루어져 있다. 30분간 보았던 꿈
이야기를 쓴 것이다. 당시 나는 초저녁만 되면 잠이 쏟아졌다.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지만 학생시절 나는 저녁만 먹
으면 잠을 자는 것으로 훈련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빠르면 새벽 2시 정도에 일어났고, 그 때부터 공부
를 하곤 하였다.
위의 글은 꿈의 배경인 고향집과 학교를 중심으로 별이 떨어지고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나오는 글이다. 당시 매월 월례
고사를 보고 등수를 복도에 공고했던 시절이다.
아래 원고지에는 "1980년 여름"에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 읽어 보면 위의 원고지 글처럼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쓴다고 한 것 같다. 모 방송국에 보내려고 쓴 글이다.
방송의 전파를 탔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워낙 많은 가구가 함께 살아 우편물 받기도 그렇고 하여 당시
내 친구이름으로 보내면서 그 애의 주소도 엉망이었기에 연락을 받을 수도 없었고, 그 뒤 그 프로를 청취하지도 못해
방송여부도 모르겠다. 내용은 대충 참새 한 쌍과 파리 한 쌍이 데이트하는 내용을 내 처지와 비교하여 쓴 것이다.
아래의 "바람"이라는 글은 1981년 1월에 작성한 글로 원고지 매수가 총 28페이지(내용만 26P)에 이른다. 대학교 3학년
을 마치고 4학년으로 올라가기전 겨울방학때이다. 당시 나는 나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글이고 어쩌면 나도 이런 길
에서 내 미래를 보내고 싶었기에 관심을 더 가졌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결국 나는 엉뚱한 삶을 살고 말았지만 말이다.
글을 쓰게 된 이유로는 81. 1. 14. KBS 제 1TV에서 방영된 100분드라마 "바람"을 시청한 후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어 펜을 든다고 되어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탈렌트 '신구'씨가 열연한 '김성배'라는 인물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다. 지금의 내 실력
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나도 한때 필력이 이렇게 좋았다.(지금 나는 팔불출처럼 과거의 나를 칭찬하고 있다...^-^)
원고지 26매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 때 그 드라마가 마치 내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듯 한다. 내 자랑이 심한 것 같
아 여기까지만 해야될 것 같다.
내용을 소개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마지막장에 쓰여 있는 몇 줄만 옮겨 본다.
제발 "김성배"와 같은 인물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이땅에선 없었으면 한다. 권력에 대한 집념도 좋고, 국회
의원이 되는 것도 좋고, 출세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국가를 위하는 길이고, 자신과
가족, 사회를 위하는 길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부정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은 이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아래의 글은 84년이 지나갈 무렵에 작성하였으니, 이 글도 벌써 30년이 된 것이다. 내가 총각때로 은행 행원시절이다.
마포 합숙소에서 청계8가로 출퇴근할 때인데 교통난국의 해법을 나름대로 풀어본 것이다.
역시 젊을 때는 나도 한 패기 한 것 같다.
해법으로는 땅덩어리가 한정되어 있는 도심에서는 어쩔수 없이 하늘로 땅으로 도로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
이다. 지하로 길을 많이 내던가 고가도로 등 하늘로 길을 많이 내어서 교통지옥을 해결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몇 개가 더 있지만 원고지가 아닌 A4용지에 또박또박 정성을 기울여 나의 의견을 쓰곤 하였다.
어디에 발표할 것도 아니고 발표를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그렇게 나의 속에 있는 것을 표출한 것 같다. 오래된 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때가 더 순수했고, 더 열정이 있었으며, 글에 더 힘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이후 왠지 그
냥 편안안 생활에 안주하며 나를 너무 작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과거에 얽매어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더 소
중한 시간은 없다. 이제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