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좀 천천히 가자

헤스톤 2014. 8. 28. 16:52

 

일요일에 하루종일 TV를 끌어안고 집에만 있으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몸이 근질거린다.

우리 아파트 옆동에 사누구는 하루 4Km이상 걷지 않으면 그 날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 꼭 그런 기분이었다. 집에만 있으려니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먼길을 떠날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산책이라도 해야겠기에 몸을 일으켰다.

혼자 가는 것은 심심할 것 같아 집사람과 함께 걸었다.

 

위에 보이는 길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앞을 흐르는 월문천 길이다. 여름이라고 양쪽으로 풀이 무성하다.

봄에는 맡을 수 없었던 풀 냄새가 진동한다. 한철 신나게 살다가는 매미같은 냄새이다.

아래 사진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의 꽃들도 피어있다. 식물과 관련하여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사실 식물뿐

만 아니고 다른 분야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지만 식물과 꽃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그렇기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익혀야 되는 것이리라.   

 

왼쪽으로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시냇물(月文川)이 흐르고 있다. 

아이들과 고기잡는 이들을 보며 어릴 적 생각도 나지만, 아들이 어렸을 때 잘 놀아주지 못한 것이 가슴을 때린다.

이름 그대로라면 달과 글이 있는 냇가이다. 나의 글도 저 물처럼 달빛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길

빌어본다.   

 

아래 사진은 월문천이 한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여기저기의 계곡에서 내려와 내를 이루더니 강으로 간다. 강물은

바다로 갈 것이다. 저 물이 바다에 도착할 때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팔당대교를 향해 가는 길 왼쪽으로 아래 사진처럼 담쟁이들이 열심히 올라가는 것도 있고 내려오는 것도 있다.

담쟁이를 보면 '도종환'님의 '담쟁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담쟁이와 관련하여 이 시보다 더 가슴에 들어 온

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떄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담쟁이 사진을 찍으면서 나도 뭔가 하나 떠오를 것 같아 잠시 걸음을 멈췄더니 집사람은 저 만큼 앞서가고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걷는다. 이때 따라 잡으려고 서둘면 안된다. 무리하다가는 큰일난다.

 

오래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의 매일 저녁시간에 달리기를 하며 운동을 하던 어느 아내가 자기 남편과 함께 마라톤 대회 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젊었을 때 운동 좀 했던 남자로서는 달리기도 얼만큼 자신있었으리라. 단축마라톤으로 몇 Km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을 잡아 주기도 하면서 호흡을 맞춰 잘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몇 백미터를 남기고 아내는 스퍼트를 하였다.

남은 거리가 얼마 안되다 보니 기록에 욕심이 있었는지, 남편과 함께 보조를 맞추다 보니 힘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

지 아내는 힘껏 달린 모양이다. 순간 아내가 훨씬 앞서나가니 남편은 아내를 따라잡기 위해 서둘렀던 모양이다.

아내를 놓치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골인을 한 후 숨을 고르고 있는데 결승선 약 50m전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더란다.

갑자기 무리하게 달린 남편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결국 사망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서둘지 않겠다. 아래 사진처럼 집사람이 아무리 앞서나가도 따라잡으려고 무리하지 않겠다.

따라 잡을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생도 남들보다 앞서가지 못했는데 이제 빨리가서 뭣하겠는가.

 

오래간만에 걷다보니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아래 사진처럼 정수장이 보이고 운동기구가 있는 이곳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하였다.

집에서 이곳까지는 약 2.5~3Km 정도 되는 것 같다.

 

집사람보고 사진 한장 찍어보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이 찍는다. 정말 재주없다.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이~고..이것도 사진이라고 찍은  것이야?" 그랬더니 숨쉴 틈도 없이 반격 펀치가 날아온다.

"앞으로 나한테 사진 같은 거 찍으라고 하지 마!" 그래서 할 수 없이 셀카로 하나 찍었다.

"당신은 도대체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구먼.."

"그래요.. 남편 하나 잘 만난 것 밖에 없다.."  그 말에 셀카를 찍다가 피식 웃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강은 도도하게 흐른다.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내가 죽으면 지방에 뭐라고 쓸까? 일반적으로 쓰는 學生이라고 쓰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그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살아서나 배우고 익히는 것이지 죽어서까지 무엇을 얼마나 배우겠다고 이 사람도

학생, 저 사람도 학생, 거의 모두가 학생이다. 그렇다고 先生이라고 쓰기도 그렇다. 은행에서 지점장을 했다고 支店長

으로 쓰는 것도 그렇고 회사에서 이사를 했다고 理事로 쓰는 것도 그렇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동대표나 감사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쓰는 것도 마땅하지 않다.

내가 조부모나 아버지 제사지낼 때 사진으로 대신하듯이 내 아들도 사진으로 대신하겠지만

만약 지방을 쓴다면 "현고시인부군신위(顯考詩人府君神位)"라고 썼으면 한다.

그럴듯한 시 한편 없지만, 내 후손들에게 시적영감이라도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쓰길 바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집사람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다. 못 따라오는 내가 답답할 것이다.

좀 천천히 가자고 하니 미안해하는 표정이다.

아래 사진 오른 쪽에 월문천이 흐르고 그 오른쪽엔 산책코스로 적당한 90m 높이의 금대산이다.

왼쪽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천천히 가길 바라는 일요일 한나절이 이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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