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차를 가져갈까 하다가 거리도 너무 멀고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이용
해 달라는 청첩장의 문구도 있고 해서 버스를 오래간만에 탔다.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보
니 버스타는 것도 서툴다. 약 십오년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였고, 학교 다닐 때는 거의 매일
버스를 이용하였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자가용만 이용하다보니 간혹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어색하다.
버스를 오래간만에 타고 기념으로 셀카를 한방 찍었다. 찍고나서 보니 이마가 훤하다. 어느덧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탓으로 이마가 많이 넓어졌다. 가발이라도 하나 사서 쓰고 다녀야 될 모양이다. 요즘에는 가발광고에 자꾸 눈길이 간
다. 머리숱이 적다는 것도 유전이지만 아직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유전이니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옆으로 외제 중형차들이 지나간다. 외제차를 타는 것이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지만 기사가 운전하는 중형차 뒷좌석에
앉아서 출퇴근하고는 싶었다.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폼도 잡고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
신세가 처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아는 학교 동창 몇몇처럼 나도 그러고 싶었다는 것이다.
학교다닐 때 나하고 비슷하게 공부하거나 잘 못하던 동창들이 장차관급으로 출세하거나 돈 좀 벌었다고 폼잡고 다니
는 그런 것을 나도 하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비교라는 놈이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나 자신 그
저 그런 인간인 탓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옆으로 지나가는 외제 중형차를 보니 떠오르는 잡념이다.
솔직히 나도 누구처럼 하루에 자기 손으로 문을 여는 것은 집을 나설 때 한번뿐이라는 생활도 하고 싶었다. 연말에는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큰 돈을 기부도 하고 학교 발전기금도 팍팍 쓰면서 폼 잡으며 살고 싶었다.
어찌보면 개도 안물어 갈 똥폼이겠지만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환승을 하였다. 휴일인데도 혼잡하다. 대부분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다. 누군가 나에게 자리
라도 양보하면 많이 어색할 것 같은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애는 없었다.
옛날 출근전쟁 할 때 생각이 난다.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 젊어서 좋았고 꿈이 있어서 좋았다.
내가 탄 칸은 약냉방이라고 되어있다. 약이라는 말에 한참동안 눈이 꽂힌다.
지하철 단상
지하철에 약냉방은 있어도
강냉방이라는 말은 없다
약한 것이 좋을까
강한 것이 좋을까
노약자를 위한 좌석은 있어도
젊은이를 위한 좌석은 없다
있는 것이 좋을까
없는 것이 좋을까
지하철에서 자리는
양보할 때가 좋을까
양보받을 때가 좋을까
인생이란 받기도 하지만
베풀면서 가는 길
성적이 올라가고
인격이 올라가는 것은 좋지만
지하철을 타려면 내려가야 한다
약속을 지키며 겸손하게 살려면
내려가야 한다
강(强)한 것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약(弱)하다고 언제나 대중적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 중 누가 더 남의 눈치 안보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일까.
내가 지하철에서 앉지 못하고 계속 서서 온 것이 자랑이 될 수는 없다. 이 사회에서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자리도
물려받을 때는 물려 받아야 할 것이고, 내줄 때가 되면 적절한 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내놓고 가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내려갈 때 올라가려고 기를 쓰고 올라가야 할 때 내려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나 자신 올려야 될 것은 올려야 되고 내려야 할 것은 내려야 한다.
쓸데 없는 우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였다. 이제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올라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던지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올라가던지 올라
가야 한다. 나를 낮추면서 겸손을 가슴에 품고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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