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어머니에게 전기밥솥을 사서 드렸던 것처럼 며칠전 아들이 밥솥을 사서 집사람에게 보냈기에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데, '밥통'이란 말이 자꾸만 먼저 머릿속을 알짱거린다.
우리는 왜 좀 못난 사람을 밥통이라고 하는 것일까? 밥통같은 자식이라든지..밥통같은 남편 등등..
막상 밥통이 그 소리를 들으면 너무 억울해서 고소라도 할 수 있는 말인데 말이다.
어쩌면 못난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기의견과 다르거나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하의 언행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사실 밥통은 위를 가르키는 것일 테고, 먹고 살려면 위는 매우 중요한 곳이 아닌가?
그런데 위를 그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것일까? 위도 엄연히 오장육부중 하나인데..
그리고 멍청하기는 간이 더 멍청하다고들 하는데..왜 간이나 폐같은 자식,혹은 소장이나 대장같은 자식이라고
하지 않고 밥통이라고 한단 말인가? 정말 밥통은 밥만 축내고 제 구실을 못하는 장기인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밥통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밥솥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면서 쓸데없이 밥통을 편들고 있는 내가 더 우습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정말 몰라서 그러냐.. 야이! 밥통아!"
밥솥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밥솥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집이든지 밥만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밥솥엔 정말 많은 것이 들어있다. 사랑과 정성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기쁨과 슬픔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약 7년여전 대전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밥솥이 오래되어 고장난 탓인지 밥이 이상하게 되었다.
아주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푸석푸석하여 맛이 없었다. 아버지는 밥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하시고
어머니는 안절부절이다. 아마 두분만 계셨다면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으셨겠지만, 아들에게 이런
밥을 먹게 하는 것이 언짢아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더 속이 상했다.
아버지에게 한 소리 들어서가 아니라 아들에게 엉성한 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밥솥이 자꾸만 말썽을 피운다고 미안해 한다.
저녁식사후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가는데 아무래도 찜찜하다. 밥솥이 다음날도 말썽을 부릴 것이 뻔하고
어머니의 스트레스는 올라갈 것 같다. 하이마트로 가서 적당한 밥솥을 하나 사서 다시 부모님 집으로 갔다.
그때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그려보면 스스로 뿌듯하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효도를 한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약 두 달 전부터 우리집 밥솥이 말썽을 피웠다. A/S센터를 통하여 고쳐도 잘 안되니까 집사람은 아예 쓰지
않던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고 전기밥솥은 보온역할을 하는 밥통 구실만 시켰다.
밥솥 하나 사라고 해도 영 말을 듣지 않는다. 골프치러 해외로 지방으로 다니는 것에 비하면 얼마 하지도
않는 밥솥인데 말이다. 이럴 때 궁시렁대지 않을 내가 아니다.
"한 달에 수차례 필드에 가는 것을 한 번만 덜 가도 밥솥 하나 사겠다."
"우리 수준에..내가 지금은 지점장도 아닌데 각자 차를 몰고 다니는 것도 낭비야.."
"한 달에 술 먹는 돈을 조금만 아껴도 밥솥 몇 개는 사겠다.."
이런 말을 하면서 투덜거렸더니 자기가 밥 먹는데 지장을 준 적이 있느냐며 난리부르스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인격 좀 되는 내가 참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지내던 중 아들이 며칠 전 내 생일이라고 집에 왔다. 용돈하라면서 아들이 봉투를 하나 준다.
그걸 본 집사람은 밥솥 하나 사야겠다고 한다. 나는 들은 체도 안했다.
그런데 집사람의 말을 들은 아들이 밥솥을 사서 집으로 보낸 것이다.
어쩌면 집사람은 이것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배달된 밥솥을 보고 입이 찢어진 마누라..신이 났다.
기왕에 밥이 잔뜩 있는데도 그리고 방금 전에 밥을 먹어 배가 부른데도 배달된 밥솥으로 밥을 하고
먹어보라면서 완전 맛있다고 난리다.
난리부르스때의 난리와는 다른 것이지만 정말 난리난리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나는 내 멋대로 정의를 하나 내린다. 밥솥은 아들이 사서 어머니에게 드리는 것이고, 밥솥은 어머니이다.
그 속엔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 바랜 원고지 (0) | 2014.09.23 |
---|---|
좀 천천히 가자 (0) | 2014.08.28 |
대중교통을 이용한 어느 날 (0) | 2014.06.11 |
응급실에서의 몇 시간 (0) | 2014.05.07 |
문턱없는 인생은 없다 (0) | 2014.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