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문턱없는 인생은 없다

헤스톤 2014. 4. 2. 13:17

 

 

 

 

거실에서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아내가 말을 건다.

"여보 방지턱에 대하여 詩 한번 써보면 어떨까?"

"왜 그것과 관련하여 무슨 내용이라도 방영되고 있나?"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내가 당신 방지턱인 것 같아서.."

아내는 자기가 내 인생의 방지턱 역할을 하면서 살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과속을 방지하고 안전운행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는 길에 불편을 주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인지..

이 대목에서 내가 만약 "당신은 방지턱이 아니라 걸림돌이야!"라고 하면 싸우게 될 것이다. 과거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가 고초를 겪은 경험이 여러번 있기에 잠시 머리를 굴려본다.

이때 센스있는 남편이라면 "아니야. 당신은 방지턱이 아니라 내 인생의 디딤돌이었어!"라고 말했을 것이지만 내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튀어 나온다.

"방지턱~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문턱이었지.. 걸려 넘어뜨리는 문턱.."

여기에서도 다음 말을 하지 않았다면 한바탕 하였을지 모른다.

"내가 힘들 때 기대기도 했던 문턱..그리고 문턱과 관련하여 詩나 한수 읊어 보려고 해!"

 

인생은 문턱의 연속

문턱은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넘으라고 있는 것

재수가 나갈지도 모르니

밟지말고 그냥

닥치는 대로 넘는 것

 

 여기까지 쓴 이후 結語(보수와 진보처럼 문턱을 계속 만드는 사람과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될 것이라는 의미)만 맴돌 뿐 연결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역시 나의 실력으로는 의욕만 있다고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렵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2가지가 있다고 한다. 나의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것과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나의 주머니에 넣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것을 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하고,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만드는 사람을 사장님이라고 한다. 따라서 선생님에게 대든다는 것은 배우기 싫다는 것이고 사장님에게 대든다는 것은 돈 벌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2가지를 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은 마.누.라...

따라서 마누라에게 대든다는 것은 살기 싫다는 것이다.

 

이런 아내를 울타리로 생각하거나 바람을 막아주는 벽으로 생각하지 않고 문턱으로 여기고 있는 나의 시각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겠지만, 간혹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 문턱이 없었다면 좀 더 자유분방하게 살았을지는 몰라도 사는 재미도 없었을 것 같다. 그 문턱이 없었다면 일반사회적인 관점에서 출세나 성공을 했을지 모르지만 노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문턱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크게 실패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엔 문턱들이 많이 없어졌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들어올 때 옵션으로 문턱들을 없앴다. 거동하기 편하게 아예 문턱을 만들지 않는 집들도 많다. 그런데 문턱을 없애는 것이 꼭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인생길에서 문턱은 수없이 많았다. 걸려 넘어진 적도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학교 입학시험이다. 다음해부터 서울에선 입학시험이 없어졌지만 그때 중학교 입학문턱을 넘지 못해 엄청 고생을 하였다. 전기와 후기 모두 떨어졌다. 재수를 하였다. 재수한다고 공무원이시던 아버지가 돈을 많이 썼다. 반에서 10여명은 일류중학교에 들어가는 꽤 괜찮은 학교의 담임선생님집에서 하숙을 하였다. 재수하면서는 반에서 1등도 몇 번 했고 성적은 앞에서 놀았다. 그런데 재수를 할 때 어머니가 점쟁이한테서 받아온 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높고 높은 백두산이 아니라 경치좋은 금강산이로다"

그 말은 일류중학교에 들어갈 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점쟁이 말대로 중학교의 전기 입학시험에 또 떨어졌다. 정말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후기로 시험 본 중학교에는 좋은 성적으로 들어갔지만 내 인생의 시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나는 점쟁이 말이 그때만 맞지말고 지금도 맞기를 빌어본다. 지금은 고향 뒷동산만도 못한 인생.. 백두산은 원하지 않는다. 경치좋은 금강산이라도 되면 좋겠다. 금강산은 명산 중의 명산이다.

중학교 시험볼 때의 운세 문구도 잊혀지지 않는다. "靑山孤松 碧海片舟" 라고 쓰여 있었다. 직역하면 "푸른 산에 외로운 소나무이고 푸른 바다에 조각배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소나무에 비유하는 것은 좀 건방질 지 모르지만 지나온 인생 자체가 孤松이고 片舟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이후 크고작은 수많은 문턱들이 있었다. 직장문턱, 병원문턱, 관공서문턱, 은퇴의 문턱 등등..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보았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도 있었고, 차에 치여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고열로 비몽사몽의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고, 마라톤을 뛰고난 후 의식이 왔다가다 한 적도 있었다. 봄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문턱과 관련하여 별별 기억이 다 떠오른다.

 

앞으로 살면서도 수 많은 문턱들을 만날 것이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문턱들도 수 없이 많겠지만 문턱이란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문턱높이까지 발을 들어 올리면 된다. 다리가 짧다면 포기하든지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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