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봉투

헤스톤 2014. 2. 12. 11:21

 

 

봉     투

 

 

최근들어 봉투 몇 개를 받았다. 봉투라고 하면 우선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오르지만 봉투라는 것을 거의 받아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보니 최근에 받은 봉투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럼 과거에는 많이 받았을까? 많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예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그렇다. 은행생활 29년중 거의 3분의 1을 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없었다고 말하는 자체가 간지럽다. 처음부터 상대가 줄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거나 나도 모르게 놓고 간 경우에는 오해없게 돌려주기도 하였지만 봉투라는 것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쑥스럽다. 다만 부득이하게 받은 경우 누군가에게 공개하면서 나름대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처리했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은행퇴직할 때 P호텔 음식점에서 20여명의 사장님과 함께한 송별식과 몇 분한테서 전별금 봉투를 받은 것이 떠오른다. 희한하네. 그동안 연락도 없이 지낸 것이 미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최근 3개의 봉투를 받았다. 먼저 지난 설날때 장모님으로부터 받은 세뱃돈이다. 장모님은 매년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고 봉투에 빳빳한 돈을 넣어 세뱃돈을 주신다. 예년에는 만원짜리 한장이었는데 올해는 두장이 들었다. 그동안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초등학생이 중학생되면 세뱃돈을 올려주듯이 나이를 먹었다고 인상한 모양이다. 집사람 봉투에도 두장이 들었다. 아들녀석은 신사임당을 받았다. 물론 나도 그렇고 돈 벌고 있는 아들도 세뱃돈 받은 것의 몇 배 혹은 열 배 이상의 용돈을 드리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새뱃돈을 주시는 분은 장모님이 유일하다.

 

지난 2014년 1월호 월간 모던포엠 겉표지에 말석이지만 내 사진이 조그맣게 나와 있다. 영광스럽게 신인상을 받은 덕분이다. 수상소감문과 나의 시 3편이 실려있다고 30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책 표지에다 집사람이 나보고 페이지를 표시하고 사인을 하란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한테 나눠 주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야 나의 글을 먼저 찾아서 읽어본다고 한다. 아니 원 세상에 겉표지에다 사인이라니. 내 개인 시집도 아니고 월간지에다 사인을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마누라 심정을 알기에 말 잘 듣는 나는 P59~ 63이라 쓰고 사인을 하였다.

그 날 저녁모임에 다녀 온 집사람이 봉투를 내민다. 무엇이냐고 하니 오늘 모임에 나온 사람들이 준 책값이라고 한다. 나의 글이 너무 좋다고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말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 것을 왜 받아 왔느냐고 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봉투를 받아서 좋은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 보지만 봉투를 보고 좋아하는 나도 어지간히 속물이다.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의 부사장님으로 근무하시다 지금은 한달에 두번정도만 출근하시는 고문님이 계신다. 지난 달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월간 모던포엠 1월호 월간지 한권을 드렸다. 며칠 전 업무관계로 외부에 나갔다 오니 그 날 회사에 들른 고문님이 나에게 전달하라고 했다며 창작을 통하여 즐거운 매일이 되라는 아래의 봉투를 직원이 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읽어봐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황송하다. 그냥 힘이 난다.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런데 봉투에는 얼마가 들었을까. 좀 들었지만 비밀이다.

 

 

 

지난 1월호 월간 모던포엠에 실린 나의 최우수신인상 수상소감문을 실어 달라는 누구의 요청이 있어 이곳에 옮겨 본다. 

 

수상소감문

 

뜻밖의 수상소식을 듣고 수상소감문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지구의를 쳐다 보았다. 기울어져 있다. 이 세상은 어쩜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웃들의 고통과 삶의 기울어진 면도 고운 시선으로 들여다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고통일까, 아니면 즐거움일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 된다고 본다. 편안하고 밋밋한 생활에서 좋은 글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렇다고 억지로 힘들거나 막 살 필요는 없다. 언제나 바른 길을 걸으며 남들이 볼 수 없는 곳도 볼 수 있도록 시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시는 누구나 쓸 수 없다. 지금까지 나의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해 본 일은 없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글다운 글을 쓰고 싶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진짜 시를 쓰도록 하겠다. 정성을 기울인 글들이 잘 익은 음식이 되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좋은 시를 쓰도록 하겠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쓰라고 저에게 이렇게 과분한 상을 주신 전형철 발행인님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신인으로 등단하신 선후배님들께 죄송하며 모던포엠을 사랑하는 독자와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서방님에 대한 애정표현을 수시로 하는 아내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아들도 고맙고, 동네에서만 알아주는 시인 남편을 사랑하며 힘겹게 살아오신 어머니!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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