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인문학상과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다

헤스톤 2013. 12. 16. 17:52

 

 

상을 받았다. 무슨 밥상 그런 것이 아니고 2013. 12. 14. 문학과 관련하여 상을 받았다. 내가 상을 받아본 지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니 까마득하다.

은행생활하면서 업무유공 등으로 재경원 부총리 표창, 은행장 표창 등을 받았고, 대학원 다닐 때 장학금과 대학교 다닐 때 장학금(등록금 전액 면제)증서 등을 받은 기억은 나는데, 상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 3년 개근상 받은 것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위의 사진은 신인문학상과 최우수신인상으로 받은 상장과 상패들 그리고 축하해 주기 위해 온 가족과 초등학교 동창, 직장 직원들이 준 꽃다발을 모아서 찍은 사진이다.

 

아래 사진은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신인작품상과 영예의 본상이라는 최우수신인상 수상과 관련된 상장과 상패이다. 너무 과분한 상이다. 올해 등단한 선후배님들에게 죄송하고 고맙다. 

 

 

 

 

 

지난 토요일(2013. 12. 14) 있었던 행사중 나와 관련된 사진 몇장을 옮겨본다. 사진은 회사직원이 찍어 준 것이다.

 

맨 앞줄에 앉아 행사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얼핏보면 꽃밭속에 있는 것 같다. (사진 제일 오른쪽에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분은 달빛문학회 회장님이신 구인순 시인, 한복입은 박미숙 시인, 나의 오른쪽은 이향임 시인, 사진 맨 왼쪽분은 그 날 귀빈으로 참석하신 원로작가님 이신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여성들 이름은 한번 들으면 금방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으로 3행시도 튀어 나오는데 남자들 이름은 5번을 들어도 기억을 못하는 탓이다.)

 

 

행사시작전 행사장 전면이다. 장소는 서대문 독립문공원 독립관 무궁화홀이다. 무대 중앙에 전형철 발행인님이 보이고 왼쪽에 그날 사회를 맡은 피기춘 교수님(집안 어른인 피천득씨의 영향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이 보이고, 그보다 더 왼쪽에 서 있는 내 아내(흐릿한 모습)가 보인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강단에 섰다. 수여를 담당한 사람들은 전형철 발행인님과 이두형시인님이시다.

아래 사진은 신인문학상장과 상패를 받은 후 기념촬영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최우수신인상 수상과 관련된 사진들이다. 너무 큰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기 위해 또다시 강단에 섰다. 상장과 상패, 트로피를 수여하기위해 수여자가 3분이나 올라오셨다. 왜 자세를 저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두손을 앞으로 모아 황송해 하는 모습이다. 받기에 너무 버거운 상이라 그런 것 같다.

수여자는 모두 그 날 귀빈으로 참석한 원로 시인 내지는 평론가들 이시다. 위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나는 남자이름 외우는데는 소질이 없어 이름은 잘 모른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 서운하다고 할 지 모르겠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을 모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사진속의 사진으로 오른쪽 위에 내가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 사진이 있고 왼쪽으로는 이봉창 의사 사진이 있다. 옛날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 이름은 남자라도 잘 기억한다.

 

 

상을 받은 후 수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름을 몰라 죄송한 마음으로 아래에 사진 한장 더 올려 놓는다.

 

 

 

위의 사진은 최고신인상 수상후 월간모던포엠 2014년 신년호(1월호)에 게재해야 된다고 하여 화보촬영을 위해 폼을 잡고 있는 것이다. 왠지 폼이 엉성하다. 상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상장, 상패, 트로피를 들고 있자니 무겁다. 내 인생이 너무 무거우면 안되는데..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始作이다. 詩作이다.

 

아래사진은 직원이 다시한번 찍은 것이다. 아마 그날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에 찍힌 것이 세자리 숫자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진으로보니 내가 이렇게 못생겼다. 실물은 이거보다 훨 나은데..

나는 역시 오른쪽에서 사진이 찍혀야 그나마 괜찮게 나온다. 나는 바른(Right) 생활의 사람이니까..

그런데 우리 직원은 계속 왼쪽에서만 찍어댄다. 엄청나게 찍은 사진 중 쓸만한 것이 없다. 

 

 

그 날 상을 받은 수상자들이 함께 모여 한장 찍었다. (왼쪽 아래의 박미숙 시인은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아래 사진은 그날 모든 행사를 성공적으로 주최하신 전형철 발행인님(시인 겸 평론가)과 한장 찍었다. 사진마다 내가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 사진이 있어 좋다.  

 

 

아래 사진은 초등학교 동창 대표로 온 남자총무(김종수)와 여자총무(나영순)이다. 고맙다 친구들.. 동창들이 무더기로 올까 봐 둘만 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약 8년전에 만든 재경 제원초(사실 나는 이 학교 졸업장도 없다) 동창회장을 나는 무슨 종신직처럼 맡고 있다. 당연히 총무들도 계속이다.  

위 사진 왼쪽은 회사에서 구매를 담당하고 있는 정필용 대리이고 오른쪽은 서규철 과장이다.

 

그 날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온 가족들이다. 사진 왼쪽부터 나의 아들(박상철), 매제, 나, 여동생(앞), 아내(뒤), 여동생 아들(최민규), 제일 오른쪽은 우리회사 서 과장이다.

 

최우수신인상을 받은 것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작이다. 始作..詩作..

나의 수상소감문에 있는 내용이지만 시를 쓴다는 것은 고통일까, 즐거움일까.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된다고 본다. 밋밋하고 편안한 생활에서 좋은 시를 기대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렇다고 막 살 수는 없다.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이웃들의 고통이나 기울어진 면도 볼 줄 알아야 된다고 본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곳 까지 볼 수 있도록 시력을 높여야 한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좋은 시는 아무나 쓸 수 없다.

나는 시를 쓸 것이다. 나의 글이 잘 익은 과일이 되어 아무나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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