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벌써 이렇게 갔다

헤스톤 2014. 3. 11. 17:56

 

 

 

나의 결혼기념일은 3. 10.이다. 이제 29년이 되었다. 결혼할 때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을 아내와 함께 하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살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빨리 갔다. 20대에 접어들면서 나의 일기장에 쓰여 있는 글 "즐길지니라 청춘! 내일은 모르는 인생이어니.."했는데 이룩해 놓은 일도 없이 이렇게 시간은 후다닥 가버렸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3. 10.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그래서 당시 생각하기를 내가 근로자로 생활하는 한 결혼기념일은 매년 공휴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날자도 그렇게 잡은 것인데 정말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더니 그로부터 10년도 못가 근로자의 날이 변경되었다. 석가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결혼하기 전 아내와 용인 민속촌에 갔던 기억이 난다. 사실 민속촌에서 무엇을 본 것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고 그날 좋았던 감정이 떠올랐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결혼기념일에 매년 무슨 이벤트를 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니 오케이 한다. 이제는 튕길 나이도 아니다 보니 어지간하면 나의 요청을 거의 수용한다. 3. 9.(일) 용인으로 출발했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을 먹으러 중화요리집에 갔다. 앞으로도 결혼생활을 오래오래 하라는 의미에서 길다란 면을 먹기 위한 선택이었다. 코스요리를 시켰는데 맛은 좋지만 양이 너무 많아 포만감을 느끼며 민속촌으로 향했다. 30년만에 가보는 곳이다. 그런데 처음 가본 곳처럼 매우 생소하다. 3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주차료 2,000원은 그렇다치고 입장료가 1인당 15,000원이다. 볼 것이 뭐가 그리 많다고 입장료가 이렇게 비싸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연애할 때라면 이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지만 표를 끊으면서도 별로 상쾌하지 않다. 

괜히 신경질은 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기에 거금 30,000원을 주고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각종 물건 파는 곳과 먹을 것을 파는 곳은 왜 이리 많은지 첫인상은 별로였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한국물가가 비싸다는 소리만 들을 것 같다. 아무리 돈 가치가 없어도 그렇지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상품의 가치와 화폐가치를 자꾸만 비교하며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여기저기를 자꾸만 기웃거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내에게 머리핀이나 하나 사 줄까 했는데 들고 다니는 가방 고리를 사 달라고 해서 복어모양의 고리를 15,000원 주고 사줬다. 사실 30년전에는 비싼 것을 사줘도 아깝다는 생각을 안했을 텐데 내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 나온다.

"여자들은 쓸모없는 20,000원짜리를 10,000원에 사고, 남자들은 쓸모있는 10,000원짜리를 20,000원에 산단 말이야!"

 

 

그래도 명색이 결혼기념일 이라고 해서 이곳에 왔는데 신랑, 신부 모습으로 한장 찍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 그 곳을 지나치던 왠 젊은이가 찍어 주겠다고 나선다. 잘 생겼다. 찍어주겠다고 나선 애도 잘 생겼지만 그 옆에 애인인 듯 달라붙어 있는 젊은 여자애가 엄청 잘 생겼다. 둘이 키도 크고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여자애는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이다. 눈이 맑고 곱다. 인상도 좋다. 만약 나의 아들이 이런 여자를 며느리감으로 데려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일단 100점 만점에 80점은 바닥에 깔고 시작할 것 같다. 

 

 

내 마누라도 젊을 때는 한 인물했는데.. 적어도 대한민국내에서 5%안에 드는 미인이라고 여겼다. 물론 제눈에 안경이라고 나만 그렇게 평가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랜 시간 마음 고생하고 나이를 먹다 보니 50%안에 들기도 힘들 것 같다. 어찌보면 솔직히 인물보고 결혼했다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출세도 못하고 성공도 못했다. 속된 말로 인물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잘 생겼다는 것은 한때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누라의 옛날 사진하고 지금 모습을 보며 이렇게 다르냐고 투덜댄다. 투덜댈 때마다 한 소리 들으면서도 투덜댄다.

 

 

나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저기 있다고 하면서 아내가 한장 찍어주겠다고 나선다. 자꾸만 가까이 가까이 다가서라고 하는데 진짜로 말하는 건지 마음에 없으면서 하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당신의 호위무사가 되어 당신을 지키겠다고 하였더니 팔짱을 낀다. 그 말이 좋아서 끼었을까 추워서 끼었을까. 바람이 많이 분다. 날씨가 쌀쌀하다. 30년전 이 곳에서 팔짱을 끼고 걸을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는데 지금은 아무 감각이 없다.

 

 

 

세계문화유산 전시관도 둘러 보았다. 여러나라의 고대문화를 잠간씩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유물이 많았다. 우리는 살기위해 먹는 것일까 먹기위해 사는 것일까.

 

 

 

전시관에서 나와보니 오리들이 열심히 헤엄치고 있다. 오리는 육해공군이 다 된다. 걷기도 하고 헤엄치기도 하고 날기도 한다. 이것저것 하기는 다 하는데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달리기는 사자나 표범은 커녕 토끼만도 못하고, 수영은 상어는 커녕 조그만 물고기만도 못하며, 공중을 나는 것은 참새만도 못하다. 오리고기를 먹는 것은 좋지만 오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흘러가는 물이 되겠다.

지금까지 부부로 만나 그냥저냥 살았지만 앞으로도 저기 흘러가는 물처럼 세상구경이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오늘 하루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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