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몰았습니까
제남 박 형 순
찬바람이 쌩쌩도는 지하철역에서
맨발의 슬리퍼에 철 지난 옷차림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는 할머니
도우려고 내미는 손길을 뿌리치고
힐끔거리는 시선들과 실랑이 하며
따뜻한 옷이라도 사들고 올 아들을 기다리나
집나간 며느리를 기다리나
간난세월의 표시인 깊은 주름살과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흰머리가 버거운 듯
비스듬히 몸 가누는 것도 쩔쩔매며
갈라진 손으로 차갑게 쥐고 있는 것은
희망일까, 분노일까, 운명일까
차라리 이 장면이 드라마라면
조연이라도 슬그머니 나타날 때가 되었건만
현실은 픽션이 아닌 탓으로
칼을 품은 날씨가 넋이 나간 몰골을 짓밟아
다음 계절을 보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나의 시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해 겨울이 있기에 (0) | 2014.01.06 |
---|---|
더미필름의 한마디 (0) | 2013.12.27 |
겨울을 우습게 보지 마라 (0) | 2013.11.29 |
빠알간 아침 (0) | 2013.11.14 |
가을 벼의 각오 (0) | 2013.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