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벼의 각오
제남 박 형 순
언제나 파란 모습 간직하기 힘들 줄은 알았지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몇 점 바라보고
목이 탄다고 몇 번 외쳤을 뿐인데
석양에 탑 그림자처럼 쑥쑥 자라더니
무거워진 고개를 그만 툭 떨구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창살에 갇힌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잡초들과 다투고 물 싸움하면서 얻게 된
경험많은 허리를 바람에 기대어 흔들면서
참새보다 밤이 더 무섭고
똑바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주절거린다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하건말건
변해가는 세상에 보폭 맞춘 것을 뿌듯해하며
머지 않아 찬 서리 소식이 곱게 쌓여
익을 힘이 다하는 날
금색으로 변해버린 껍데기는 벗어던지고
필요할 때마다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받는
새하얀 알맹이로 웃으며 태어나리라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신체도 나이를 먹고 꿈도 나이를 먹는다.
어느덧 먹을 만큼 먹었다. 더 이상 단단해질 것 같지도 않다.
이제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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