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 내리는 날

헤스톤 2010. 12. 17. 17:43

 

 

 

 

   출근시 눈이 내리면 곤혹스럽다. 오늘아침에 눈이 오고 있다. 신문을 가지러 현관밖으로 나가면서 창 밖을 바라보니 거리는 하얗고 산에는 눈꽃들이 피어있다. 출근시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운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된다. 평소 30분 출근거리가 1시간 넘게 소요되기도 한다. 내리는 눈은 즐거움보다 걱정을 앞서게 한다.

 

   어렸을 적에는 눈 오는 것이 즐거움 그 자체이었다.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만 해도 눈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즐거움이었고, 함박웃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동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즐거웠다. 눈을 맞으며 썰매를 지치기도 하고 연날리기를 하기도 하였다. 

   마당에 어느정도 눈이 쌓이면 눈가래로 치우고  비로 쓸때도 즐거웠다. 다 쓸고 나면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히고 무엇보다 할머니나 어머니의 칭찬이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칭찬은 없었지만 대견해하는 모습이 보여 어깨가 으쓱거리곤 하였다. 물론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였고 미끄럼틀을 만들어 타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아침 나는 눈 오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고 있다. 반기기는 커녕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부터 하고 있다. 출근할 때가 아니라도 그다지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설경을 바라보는 것은 어느정도 좋지만 눈오는 것이 별로다. 이렇게 변한 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모르겠다.

   아무 책임없던 시절에서 무거운 책임감의 나이가 되어 버린 탓인가. 이상을 꿈꾸던 시절에서 현실의 내가 되어 버린 것인가. 깨끗한 개혁이나 진보를 동경하던 시절에서 좀 더 잘 먹고사는 국가나 자존심을 갈망하는 보수로 시계추가 옮겨간 탓인가. 너무 비약이 심한 생각들인 지는 몰라도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아침이었다. 더러움이 조금이라도 깨끗해지길 바라는 눈 내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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