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친구들의 고운 마음

헤스톤 2024. 7. 3. 09:51

 

 

 

시골 초등학교 동창들과 1박 2일로 칠순 여행을 다녀왔다.

장소는 여수와 순천이었는데, 당초 나는 참석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가 다른 일정과 겹쳐 빠지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몇몇으로부터 원망의 소리가 들렸다. 그런 와중에 여자 동창인 K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 회장님! 회장님이 안 가면 나도 안 가. 어렵게 잡은 우리 칠순 여행에서 왜 빠지려고 하는 거야?"

"일정이 잘 맞질 않네. 정기적으로 모이는 문학 모임과 겹쳐 그러니 친구들끼리 잘 다녀와~"

"그런 게 어딨어. 왜 돈이 없어서 그래. 그럼 계약금 내가 대신 내줄게. 지금 박 회장 이름으로 10만 원 보낸다."

"허~ 그러지 마. 그냥 일반 모임이 아니고,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모임과 겹쳐서 그러니 이해해 줘~"

"무슨 소리야. 그럼 이 모임은 일반 모임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칠순 여행이니 그 모임에 잘 말해서 여기에 참석했으면 좋겠어~ 지금 입금할 테니 그리 알아~"

"허~ 그러지 말라니까. "

 

 

 

여행 일자는 동창들 투표에 의해서 결정된 날짜로 선약과 겹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표를 하기 전에 미리 나의 일정을 통보하여 날짜 조정을 요구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투표 결과에 따라 날짜 결정을 하다 보니 참석이 힘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회장이기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통보를 하고도 사실 마음이 불편했다.

더구나 K로부터 이런 전화까지 받고 보니 불편지수는 더 올라갔다. 그래서 재고 끝에 선약 모임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조정하여 동창들 칠순 여행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K의 마음 씀씀이가 나의 참석을 종용했다.

 

사실 나는 고향에 있는 이 학교의 졸업생도 아니다. 물론 졸업은 안 했지만, 6학년 4월까지 다녔다. 당시 작은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대전에 있는 G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나도 작은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고향에 있는 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곳에 있는 친구들이 나에겐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고, 이 친구들이 대부분 올해 칠순을 맞이했다.  

물론 당시 9살이나 그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 입학하는 애들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작년이나 재작년에 이미 칠순을 넘긴 친구들도 있지만, 정상적으로 입학한 애들은 올해가 우리 나이로 칠십이 된 것이다. 

 

 

 

우선 우리의 칠순 여행엔 동창 S의 수고가 많았다. 처음부터 이 행사를 총괄 기획하고, 일정 잡고,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크게 수고한 덕분에 이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모든 행사가 그렇듯이 어느 누구의 희생이나 주도(主導)없이는 진행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S에게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아침 일찍 용산역에 모였다.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대부분 아침을 먹지 못해 각자 자기 먹을 것을 가져올 것으로 알았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게 아니었다. 무엇을 그렇게 많이 가져왔는지, 참석자 모두가 먹을 것을 싸 온 친구들이 많아 해외여행 시 먹었던 호텔 뷔페식 조식이 부럽지 않았다.  

동창 N은 자신이 키운 것이라며 블루베리를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얼마 전에 모 회장이 나에게 보내준 양의 2배가 넘는다. 나 같으면 그렇게 많은 부피는 들고 오기 귀찮아서라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맛보기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J나 M도 아침 대용으로 충분한 간식거리를 잔뜩 가져왔다. K는 약간 작은 크기의 맛있는 삶은 계란을 수십 개 가져왔고, M은 일기예보상 비가 온다고 일회용 비옷도 사람 숫자대로 준비해 왔다. 동창 L은 동창들 숫자대로 김밥을 준비해 왔는데, 김밥까지 먹고 나니 친구들 배가 모두 불룩해졌다. 배고프면 나 혼자 요기하겠다고 집에 있는 빵 1개와 물만 갖고 간 나의 손이 부끄러웠다.

 

 

 

사실 여행이란 그렇다. 어느 곳을 관광하고 어떤 체험을 하는 것도 주요한 것이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남는 것이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고운 마음을 볼 수 있는 여행이었다.

 

동창 S의 생일이라는 소리를 듣고 K'는 축하 케이크의 비용을 냈다. 비도 오고 많이 걸어 지친 와중에 낯선 곳에서 케이크를 산다고 돌아다닌 K의 수고도 보기 좋았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 근처 노래방에서 소리를 지른 후, 약간 출출한 배를 달래려고 라면 먹으러 갈 사람은 나를 따라오라고 했더니 L과 K'만 따라온다. 그런데 24시간 영업이라고 하는 그곳은 무인 라면가게이었다. 그런 곳에 차음 가 본 나는 물 받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잘못으로 재차 뜨거운 물을 받게 되었다. 물도 덜을 겸 L의 라면 그릇에 많은 양의 라면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L은 숙소에 있는 친구들에게 라면을 먹이겠다고 자신은 먹지 않고, 그 뜨거운 것을 들고 먼저 가게를 나서는 것이었다. 자기 먹으라고 라면을 사 주고, 라면을 덜어주었더니 L은 친구들 먹이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친구들을 생각하는 그의 가슴이 넓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먼저 나간 그는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라면이 퉁퉁 불었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여수와 순천을 1박 2일로 다녀온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친구들의 고운 마음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여수순천"으로 한번 읊어 보았다.

 

여 여기 여수, 순천에 왔다

수 수많은 인연 중 가장 오래된 인연들이 모여서

 

순 순수한 동심을 바탕으로

천 천천히 멋있게 익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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