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거이의 放言(방언)

헤스톤 2024. 5. 7. 22:46

 

 

나는 요즘 모 서예대전에 출품하려고 白居易(백거이)의 시 중에 放言(방언)이라는 詩(시)를 추사체로 연습하고 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특히 몇 개의 글자는 마음에 안든다.
아직 출품까지는 날짜가 약 한달 이상 있기 때문에 틈틈이 연습하려고 한다. 아마 한달 후쯤엔 위의 글씨와 비교시 훨씬 나아지리라고 본다. 
완전 마음에 드는 작품은 나오지 않겠지만, 어느 수준이 되는 글씨가 나오도록 연습을 한 후 위 글씨와 비교해 보려고 한다.  

 

放言(방언)은 국어사전에 보면  "거리낌없이 함부로 말함"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백거이가 거리낌없이 함부로 말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백거이(白居易, 772년~846년)는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 당나라 시대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낙천의 시는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고 쉬운 언어로 표현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행초서체로도 연습하고 있다. 추사체와 비교 시 어떤 체가 더 잘 어울리는지 분간이 안된다. 따라서 어떤 체로 출품할 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등에 나와있는 "방언"에 대한 해설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방언(放言)

 

泰山不如欺毫末 顔子無心羨老彭

태산불여기호말 안자무심선노팽

 

松樹千年終是朽 槿花一日自爲榮

송수천년종시후 근화일일자위영

 

何須戀世常憂死 亦莫嫌身漫厭世

하수연세상우사 역만혐신만역세

 

生去死來都是幻 幻人哀樂繫何情

생거사래도시환 환인애락계하정

 

태산은 털끝만 한 것도 속일 필요가 없고

안자는 팽조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리라.

 

소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끝내는 썩고

무궁화는 하루를 피어도 스스로 영화를 누린다.

 

어찌 현세에 연연하여 항상 죽음을 근심하나.

또 육신을 싫어하여 삶을 함부로 하지 말라.

 

살고 죽고 가고 오는 일 모두가 환상이니

환상에 사는 인간의 애락이 어찌 정에 얽매이리.

태산은 털끝만큼도 업신여기기를 필요로 않고

안자는 노팽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없다.

소나무는 천년이라도 끝내는 썩고 말고

무궁화는 하루라도 스스로 영화로 삼는다.

어찌 모름지기 세상을 그리워하며, 항상 죽음을 근심하리오.

또한 몸을 싫어하고 함부로 삶을 싫어하지 말라.

삶이 가고 죽음이 오는 것이 다 이것이 헛것이다.

헛된 사람의 슬퍼하고 즐겨하는 것에 무슨 정을 매리요.

이 시는 백낙천이 집권층의 미움을 받아 강주(江州)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가던 도중 배 안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그때 낙천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글뜻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태산이 아무리 크지만 털끝같이 작은 것이라 해서 업신여길 까닭은 없다.

공자의 제자 안자는 겨우 서른두 살로 요절했지만 그는 8백 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소나무가 천년을 산다 해도 결국에 가서는 썩고 말고 무궁화는 하루밖에 피어있지 못하지만 오히려 스스로 영화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육신을 미워하며 삶을 싫어할 이유도 없다.

태어나 사는 거나 다시 죽음이 오는 거나 모두가 헛것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바로 헛 것이다.

그 헛된 인생의 슬픔이니 즐거움이니 하는 것에 무슨 애착을 가지려 한단 말인가.

백낙천은 원래 시를 누구나 알기 쉽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지만 그야말로 대단히 알기 쉽게 쓴 시다.

그러나 백낙천이 여기서 말한 무궁화의 하루 영화란 영화의 덧없는 것을 한탄한 것이 아니고, 하루의 영화로 만족해하라는 뜻이다.

 

위 글을 읽으며 나는 아마 저런 경지에 도달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백거이의 시 세계에 빠져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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