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늘도 늙는다

헤스톤 2024. 3. 2. 18:20

 

 

 

1년 중 맑은 날은 얼마나 될까?

아침에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헤아려보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는 않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동, 호수는 북한산 중턱 높이에 남동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날씨만 맑다면 집에서 매일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해 뜨는 광경을 보는 날이 많지는 않다. 우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물론이고, 날씨가 흐리거나 안개가 낀 날엔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날씨와 관계없이 기상 시간이 일출 시간보다 늦는 날들이 많기  때문에 年中(연중) 해 뜨는 광경을 실제로 보는 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중 해 뜨는 광경을 보는 날이 1/3 이하라는 것은 어쩜 평범한 날이 그렇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생각해 보면 그저 아무 일없이 평범하게 보내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즉,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닥치는 일 등으로 고민과 근심 속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기타 사유 등으로 평범을 벗어나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고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고민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등, 강약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몇 개의 고민은 안고 산다. 그런 탓으로 나와 가족 중 누가 크게 아프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만 살아도 큰 복이라고 여겨진다. 정신 건강이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육체적인 건강만 잘 지키며 산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정말 매일 밥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만 해도 기적이다. 다른 것이 기적이 아니고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기적이다. 특히 자신보다도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식이 아프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으리라.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최근 마누라가 병원 다니는 일이 자꾸만 잦아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당뇨와 관련하여 다니는 것 말고도 어깨나 허리, 그 외 다른 병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은 지금도 아찔하다. 당시 복부 통증으로 1주일 이상 괴로워하던 마누라를 보고 있는 나는 무척 괴로웠다. 그때 처음부터 종합병원으로 갔으면 덜 고생했을 텐데, 동네 병원에만 다녔던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당시 마누라는 아예 밥을 먹지 못했다. 무엇이 원인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밖에서 맥주와 함께 닭 강정을 먹은 이후 시작된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하고 가까운 동네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복부 CT촬영 등을 했는데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통증은 더 심해지기만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니 다니던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H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MRI 촬영 등으로 검사결과 최종 판단은 대장염으로 나왔고, 종합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며 다행스럽게 차츰 회복을 할 수 있었지만, 일주일 이상을 고통 속에서 보낸 마누라를 보고 있던 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가는 것인데,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환자복을 입고 힘없이 누워있는 마누라를 보니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마누라보다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마누라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홀로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니 비애감으로 초라해지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마누라는 이제 앞으로 닭 강정이라는 것은 절대 먹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관계없이 자신을 나이보다 젊다고 여기고 있는 것같다. 사실 약 60~70년 전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들과 비교 시 지금 육십이나 칠십의 나이를 가진 이들의 얼굴은 대부분 너무 젊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때와 비교 시 그런 것이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과 서로 비교할 때 보면 스스로 착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가면서 누구나 젊어지는 것이 아니고 늙어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오늘도 늙어가고 있다.  

솔직히 늙는다는 것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늙어가며 몸이 예전과 다르게 자꾸만 고장이 난다.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고장이 나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젠 천천히 천천히 늙어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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