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직도 냉전중

헤스톤 2024. 3. 14. 00:36

 

 

아직도 냉전 중

 

내가 결혼한 지 어느덧 39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나의 결혼 39주년 기념일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나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날로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은 결혼기념일을 4쌍의 부부들이 모이는 ME( marriage encounter, 성당 관련 부부모임) 일자로 잡은 것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왕 모이기로 약속한 날이기에 모임 장소인 '삼각지역'으로 갔다. 예전에 한 번이라도 지나친 적은 있었겠지만, 주변 풍경으로 볼 때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당초 목적지로 삼았던 "용리단길"은  MZ 세대들에겐 인기가 있는 곳인지 몰라도, 나 자신이 젊지 못한 탓인지 눈여겨 볼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일단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삼계탕 집에서 닭볶음탕에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가까운 곳을 검색해 보니 "전쟁기념관"이라는 곳이 있기에 그곳에 가서 그런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당초 생각보다 많은 걸음수를 기록하게 되었고, 이는 최근 잠을 설치고 있는 나에게 심한 피로감을 주었다. 자연히 쉴 곳을 찾아 근처의 커피숍을 찾아다니게 되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커피숍을 빨리 발견하지 못해 얼마큼 시간을 허비하면서 더 피곤해졌다. 나로서는 근처에 보이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고 싶었지만, 일행 중 일부는 마음에 안 든다고 들어갔다 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더 피곤해졌다.

 

그 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원하는 음료들을 주문하게 되었고, 그런대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누라는 우리 일행 중 결혼 50주년이 되는 부부가 있어서 축하를 해주어야 하니, 밖에 나가 케이크를 사 오라는 것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축하해주고 싶으면 직접 나가서 사 오면 되는데, 굳이 나에게 독촉을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근처 어디에 제빵점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기에 싫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마누라의 속셈을 알기에 별로 내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종용을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다른 이들의 눈들로 인해 기분이 구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일어났다. 

 

 

 

그랬더니 50주년 당사자 중 한 명인 L 자매님이 "어머 사 오라고 한다고 가네." 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은 내가 마누라 입장으로 볼 때 꽤 괜찮은 남편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겠지만, 지쳐 있는 내 귀에는 마누라한테 꼼짝 못 하는 등신이라는 소리로 들렸다. 거기다가 S 자매님의 "고구마로 부탁해요."라는 말까지 들으니 케이크를 사 오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솔직히 일어나면서부터 피곤한 다리가 나의 짜증 지수를 높이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노점상을 하는 이에게 근처 제과점을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여 무작정 위쪽 길을 택하여 걷다가 인터넷으로 "제과점"이라고 조회를 해보았더니 가장 가까운 곳이 약 1.8Km나 떨어진 곳이었다. 피곤한 다리로 그곳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무리이기에 또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당시 '제과점'이 아니고, '파리바게뜨'같은 브랜드로 조회를 했다면 간단한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것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행인지 약 200m를 가니 일반 빵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케이크 하나 주세요?"

"오늘 일요일인 탓도 있고 하여 케이크가 다 떨어졌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럼 이 근처에 다른 빵집은 없나요?"

그랬더니 그 빵집의 직원은 친절하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조회를 해보더니 약 150m를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꺾어서 50m, 그리고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2층에 각종 빵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마 케이크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쉽게 조회하는 그 직원의 말을 들으며 확실히 나는 변하는 시대에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같은 핸드폰을 가지고 았어도 조회하는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빵집 직원이 가르쳐준 대로 터덜터덜 걷다 보니 각종 빵과 음료수를 파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예상대로 케이크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8명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빵 조각들과 일회용 포크를 포장하여 나왔다. 이것을 고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냥 이대로 일행들이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면, 그 후 그렇게 까지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지는 않지만, "원래 착한 사람들이 화내면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난 그런 스타일이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빵을 담느라고 땀을 흘리고 있었기에 마누라로부터 오는 전화는 신경질이 나서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포장을 하고 나오면서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니 "파리바케뜨" 약도를 캡처해서 보내왔다. 삼각지역 8번 출구 쪽에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모르는 동네에서 8번 출구가 어디에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삼각지역으로 가려면 그 지역을 모르는 나로서는 일행들이 있는 커피숍 앞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앞을 지날 때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기를 바라며 지나갔다. 설사 보더라도 아무도 못 본 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았는지 S 자매님이 터덜터덜 걷고 있는 나를 쫓아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8번 출구 쪽으로 가면 된대요?"

빵집을 못 찾고 있는 나에게 친절을 베푼 것으로 평상시 같으면 가식적으로라도 고맙다고 해야 될 말인데,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불쾌지수가 또 올라간다. 

"8번 출구가 어디에 있나요?. 저쪽은 3번 출구이고, 이쪽 위에 있는 것은 14번인데 8번은 어디인데요?"

S 자매님이라고 알리가 없다. 무엇보다 신경질이 나있는 나의 초라한 모습을 들켰다는 것에 대하여 화가 난다. 

 

 

 

그래도 나의 성격상 주어진 임무(?)는 완수해야겠기에 출구를 찾으려고 1번 출구를 통하여 지하로 들어갔다. 지하에서 출구 방향을 따라가며 몇 백 미터 거리도 아닌데, 8번 출구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다리도 아프고 신경질이 이제 거의 꼭대기 수준까지 가고 있었다. 총이 있으면 어디를 향해서라도 팡팡 쏴 버리고 싶었다.

나 자신 스스로는 인내심이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자부하지만, 이젠 폭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점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분노의 당초 원인 제공자인 마누라에게 화를 내면 그 몇 배로 안 좋은 상황이 분명 나에게 돌아올 것이 뻔하기에 웬만하면 그냥 참기로 다짐했다. 다만 나의 심기를 살펴서 누구라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화를 참자는 다짐을 하며 "고구마 케이크"를 사서 터덜터덜 커피숍으로 돌아왔다. 일행들이 크게 박수를 쳐 주고 칭찬하는 말을 해도 잘 들리지도 않았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마누라가 "당신 힘드신데, 이렇게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만 했어도 어느 정도 나의 분노는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 마누라의 말에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내 남편이 이런 사람이야. 내가 이래서 이 사람을 데리고 살지."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는 "마누라에게 잘하면서 이렇게 멋있는 남편과 사는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나로서는 "내가 시키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 들어주는 이런 바보를 데리고 산다"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도 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참아야 한다. 나 하나 참으면 좋게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도 자꾸만 부아가 치밀어 올라 미치겠다. 다만 마누라가 나의 이 화난 표정을 읽고,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요구하지를 않기를 바랐는데, 결혼기념일이니 케이크를 함께 자르자고 하는 등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었다. 참고 또 참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다. 열불이 뻗치면서 생각지 못한 험한 말들이 입 밖으로 마구 쏟아졌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싶어 한다. 어떠한 곳을 찾는 능력이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 누구라도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면 벌컥 화를 낸다. 마누라는 그런 의도로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마누라 심부름이나 다니는 당시 상황이 수치심으로 다가와 그만 화를 냄으로써 그 감정을 숨기려고 한 것이다.

마누라는 힘들면 그냥 돌아오면 되는 것을 왜 그랬냐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계속되는 강요로 남들 눈도 있어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고, 한번 일어서서 나갔는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다는 것은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좀 더 참지 못하고, 나답지 못하게 마누라를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한번 폭발하고 나서는 후회가 밀려온다. 정말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나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난다. 그날 그곳에서 함께 모임을 한 일행들에게도 분위기를 갑자기 어수선하게 하여 많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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