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파랑새는 가까이에

헤스톤 2022. 9. 29. 21:00

 

시계는 자정을 지나면서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어제 피곤한 탓인지 일찍 잠이 들었다가 벨 소리에 놀라 눈을 뜬 시각이다. 거실엔 불이 켜져 있고, 벨 소리가 나던 거실 탁자 위엔 마누라의 핸드폰이 얌전히 놓여있다. 그런데 마누라가 보이지 않는다. 집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없다. 베란다에도 없고, 욕실에도 없다. 실없는 사람처럼 어디에 있냐고 불러보며 이불도 들춰본다. 마누라의 핸드폰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전화를 걸어본다. 집에 없는 사람이 받을리 없다. 여지없이 귀에 익은 벨 소리만 울릴 뿐이다. 이 늦은 시간에 마누라는 어디를 간 것일까? 언제나 끼고 다니는 핸드폰을 두고 말이다.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집의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혹시 차에 무엇을 칮으러 갔다가 그 안에서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급히 내려갔다. .

 

어제 저녁 마누라는 내가 잠들기 전까지 집에 오지 않았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누라가 필드에 나가는 날은 대개 귀가가 늦다. 좋은 말로 하면 사교성이 좋다고 해야겠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술을 줄이고, 일찍 들어오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이젠 나도 면역이 된 탓인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사실 세상사는 거 별거 아니다. 도덕적인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싶은 것 먹다가 적당한 때 가면 된다. 먹고싶은 것 먹지 않고 오래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먹고 싶다는 술을 마시다가 조금 일찍 세상 뜨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마누라가 술 먹는 것을 좋아할 남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상한 기분을 표시하려고 거실에 불도 꺼버리고 잔다. 어제도 그랬다. 그런데 거실에 불이 켜져있고, 핸드폰도 집에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내가 잠들기 전인 9시에서 12시 사이에 집에 들어왔었다는 표시이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 마누라가 보이지 않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혹시 술에 취해 차 안에서 잠들어 있을지도 몰라 내려간 지하 주차장에도 없다. 1층으로 올라와 아파트 동 입구에서 길 쪽을 처량하게 쳐다본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깜깜한 밤에 사람은커녕 고양이나 나뭇잎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보니 날씨가 흐린 탓인지 캄캄하다. 아직 잠들지 않은 몇몇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외엔 보이는 것이 없다. 사실 하늘이 맑아도 서울에서 별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렸을 때 시골 마당에서 보던 별들이라도 있으면 "별 하나 나 하나"하면서 심심찮게 시간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나저나 마누라는 도대체 어디를 간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앞을 서성이다가 집에 돌아왔다. 우선 집사람의 핸드폰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내가 다루던 기종이 아닌 탓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핸드폰 잠금장치를 풀 수가 없다. 그래도 어떻게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걸기 전 최종 전화한 번호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최종 통화에 있는 시간은 아마 나의 잠을 깨웠을 때인 듯 싶다. 찍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두 번, 세 번을 걸어도 받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늦은 시간 TV를 켜놓고 기다려 본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약 30분 정도 지나니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안도와 함께 반가움이 자리잡지만, 나의 불만 가득한 소리가 문으로 들어오는 마누라 이마로 향한다. 많이 듣던 소리인 탓인지, 마누리는 별로 개의치 않으며 맨 먼저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어~ 핸드폰~ 여기 있었네~ 이거 찾아서 지금까지 헤매고 다녔는데~"

 

마누라는 핸드폰을 집에 놔두고 핸드폰을 찾아 집에 오기 전에 있었던 호프집에 갔다 온 것이다. 핸드폰을 거실 탁자 위에 올려 놓은 후, 욕실에 갔다와서는 항상 놔두는 곳에 핸드폰이 없으니 술집에 놔두고 왔다고 생각하고 거리로 약 1Km가 되는 곳을 이 캄캄한 밤에 걸어갔다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없으니 그 건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모 단란주점에 가서 문의를 하였고, 그곳에서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이젠 잠도 다 달아났다.

술 좀 먹고 다니지 말라고 언성을 높이면 이 밤중에 싸움으로 번질까봐 꾹 참았다. 마누라가 미우면서도 처량해진다. 나이 탓을 해야 할까? 희끗거리는 귀밑머리가 오늘따라  더 하얗게 보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생했을 마누라가 안쓰럽다. 그러면서 마누라의 핸드폰처럼 실제로 중요하거나 필요한 것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래 전 읽은 동화 "파랑새"가 생각난다. 틸틸과 미틸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나 자기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그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으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주제의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먼 곳에 있고, 나에겐 쉽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의외로 파랑새는 항상 가까이에 있다. 파랑새는 재산의 다과, 권력의 유무, 학식의 고저와는 상관없다.

소소한 생활에서 만든 작은 행복들이 모여 큰 행복이 된다. 행복은 우선 받기보다는 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포용하고 용서하며 나누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파랑새도 가까이에 있고, 핸드폰도 가까이에 있고, 마누라도 가까이에 있다. 마누라가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에 감사기도를 올리며 심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힌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예 횡설수설(3)  (2) 2022.10.23
입꼬리를 올리며  (2) 2022.10.09
서예 횡설수설(2)  (7) 2022.08.17
서예 횡설수설(1)  (0) 2022.07.24
홍석원 兄을 보내며  (0) 202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