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예 횡설수설(1)

헤스톤 2022. 7. 24. 18:00

(서예교실에서 열심히 쓰고 있는 나)

 

1. 서예라는 용어

 

나도 이제 書藝(서예)에 入門(입문)한 지 어느덧 5년 이상이 흘렀다. 어린 시절에 붓글씨는 아니지만, 연필이나 펜으로 글씨를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것이 이순의 나이를 넘어 늦게라도 서예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옥편 찾는 법을 익힌 탓인지, 학생시절 漢文(한문)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의 칭찬은 물론이고, 나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학생들도 있었으며, 漢字(한자)를 잘 쓴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 漢文(한문)을 보통의 일반인들에 비해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漢文書藝'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보통 붓으로 쓰는 글씨를 書藝(서예)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중국에서는 書法(서법)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書道(서도)라고 한다. 그냥 약간은 품위 없이 붓글씨라고 하는 것에 비해서는 그래도 좀 있어 보이는 이 말들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차이가 없다. 엉덩이를 궁둥이라고 하거나 방뎅이라고 하는 정도의 차이다. 서양에서 히프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올해 생일에 아들이 선물한 20호 붓인데, 보통의 20호보다 장봉이다)

 

그러면 왜 동양 3국에서는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는 이러저러한 말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각국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일상적으로 한문을 사용하는 중국에서는 서체에 대한 법칙이 오래전부터 정립되어 있었다. 법칙이라함은 모든 현상의 원인과 결과, 또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규칙을 말하는 것으로 글씨에도 이런 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법이라고 하면 왠지 딱딱한 느낌이 있지만,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모범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그들이 사용하는 상용한자에서 보듯이 본래 漢字(한자)와는 조금 다르게 간결화시켰다. 그리고 대개 글자는 한자와 가나를 섞어 쓴다. 모든 것을 압축시키고 간결하게 하는 그 나라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고, 불교문화의 영향과 더불어 '검도나 다도'처럼 품격을 높이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道(도)라는 글자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도 한 이유이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일본문화의 영향으로 書道(서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해방 후 書藝(서예)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 서예계의 거목인 소전 손재형(1902~1981) 선생이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식민사관을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서예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사실 용어를 무엇이라고 하건 서예와 관련 없는 대중들은 상관하지도 않을뿐더러 크게 관심도 없다. 하지만 한, 중, 일이 부르는 이 용어들을 구분한다면, 팔이 안으로 굽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예라는 용어가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조금 더 상위의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法이나 道라는 말이 아래의 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붓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 기본적으로 중시 여기는 運筆(운필)부터 익힌다.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붓을 갖고 운전하는 것이다. 운필은 글씨를 쓰는 법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글씨마다 "역입, 중봉, 삼절"같은 기본 운전법(이에 대하여는 기회가 된다면 추후 좀 더 기술하겠음)이 있다. 그리고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 法이라는 기초 위에 道라는 정신을 가지고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서법이나 서도라고 부르는 것을 경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즉, 서예라는 용어로 통일하자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여하튼 법, 도, 예라는 어느 용어를 사용해도 그 속에 있는 깊은 의미를 새기며 붓을 든다면, 단순히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자세를 가다듬고 서예를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선생의 체본을 보고 연습한다.- 위 글씨는 왕희지의 집자성교서 중 일부로 왼쪽이 체본이다)

 

서예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는 말이지만, "書心畵也(서심화야) 書如其人(서여기인)"이라는 말이 있다. 즉,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린 것이고,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는 말이다. 

나도 이러저러한 사람들로부터 서예를 배웠고 배우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다른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어느 선생한테 배웠느냐에 따라 비슷한 체를 구사하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모두 약간의 차이는 다 있다.  위의 사진은 최근 배우고 있는 행서체로 왕희지의 집자성교서를 보고 쓴 것으로 선생이 써준 체본과 내가 쓴 글씨를 비교하기 위해 찍어본 것이다. 여튼 글씨는 곧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이며,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붓을 잡는다.

 

 

(역시 왼쪽이 체본이고, 오른쪽은 내가 쓴 글씨이다. 책 77페이지를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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