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씁쓸한 어느 날

헤스톤 2022. 6. 5. 17:10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대부분의 일이 다 그렇다. 지금까지 살면서 체감상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일이 예상을 벗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좋은 일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도, 나쁜 일은 어김없이 예상대로 된다. 

사실 어제 법원에서 있었던 일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었다.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푸른빛이 힘을 잃어가는 상태이었다. 그럼에도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참석했지만, 역시 이변은 없었다. 그래도 자꾸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약 일주일 전만 해도 기대지수가 좀 있었지만, 이렇게 급변할 줄 몰랐다. 결국 나 자신도 공을 들이며 열심히 일했던 이 회사는 법정관리를 지속하지 못하고 폐지결정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다. 5월을 보내는 늦봄의 향기도 회사를 위로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법원을 나서며 보이는 세상은 아름다운 하늘과 정반대로 보여 아래의 단어들로 구성된 글을 나열하게 된다.  

 

법원 문을 나서며

 

가을 하늘만 높고 푸른 것이 아니다

늦봄의 하늘도 때로는 아름답다

그런데 이 좋은 날 왜 이리 쓸쓸한 것일까

세상이 온통 구겨져 있다

숲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로 귀를 씻고

엄마 닮은 하얀 꽃에 눈을 맞춰보아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

아카시아 향기 사라진 자리

날파리들만 뛰어다닌다

 

동일 사안을 두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주채권자와 소액 채권자 사이의 의견도 다르다. 회생가능 여부에 대하여도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린다. 결국 주요 채권자 중 한 곳에서 협조 의사를 거둬들임으로써 조사위원도 회생계획 수행 가능성이 없음을 발표하게 되었다. 

사실 기울어진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매우 힘들다. 새로 회사를 설립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어쩜 회사가 문을 닫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 큰 부담없이 다니던 일터가 없어지기 때문에 허전함이 높았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일상을 하지 못하게 됨에 따른 불편으로 더 씁쓸했을 것이다. 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위의 표현에 맞춰 漢詩(한시) 한수를 읊조렸다

 

관계인집회를 마치고(終 關係人集會)

 

議決集會不開催(의결집회부개최)

會社閉門失去處(회사폐문실거처)

長前豫期嫌結果(장전예기혐결과)

靑天凉風高悲淒(청천양풍고비처)

 

의결을 위한 집회가 열리지 못해

회사는 문을 닫고 갈 곳을 잃었다

오래전부터 예상되었던 결과가 불만스러워

푸른 하늘과 서늘한 바람이 쓸쓸함을 높이고 있다 

 

내가 CRO라는 직책으로 일을 한 것이 2018년 2월부터이니까 어느덧 4년 이상이 흘렀다. 그동안 담당한 업체수만도 이제 6개나 된다. CRO라는 것은 한 업체에서 길게는 8~9개월, 짧게는 3개월짜리 계약직이다. 그런데 이제 끝나는 이 업체에서는 1년 2개월을 근무하였다. 나 개인으로서는 복 받은 셈이다. 그런 탓인지 이 업체의 결말이 좋지 못해 더 아쉬움이 남는다. 법원에서 관계인 집회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지만, 오늘은 씁쓸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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