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움에 대한 단상

헤스톤 2022. 5. 21. 10:10

 

 

저의 신간 서적입니다.

 

지난 2018년 가을 "기울어짐에 대한 단상"이라는 책을 낸 이후 제 2 문집이 되겠습니다.

인터넷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세움에 대한 단상"을 치면
책 정보나 서평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친구들의 서평만 올립니다.

 

세움에 대한 단상(모던포엠 작가선 176)  저자 : 박형순
 

책 소개

작가 박형순은 따뜻한 눈을 가졌다. 늘 소외되고 외로운 작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 오롯하게 품어 담담한 언어들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서  평

詩書畵(시서화)를 갖춘 현대의 선비
진종한 (詩人)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말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씀이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우정이 깊어지고 서로 배우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벗이 꼭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우정을 나누는 것뿐만이 아니고 전화로라도 안부를 묻고 삶에 대하여 또는 인생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값진 일이라 생각한다.
일전에 친구 박형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 [기울어짐에 대한 단상]에 이어 두 번째 문집 [세움에 대한 단상]을 엮어 上梓(상재)할 예정인데 추천사를 좀 써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깜냥을 알기 때문에 극구 사양을 했다. 문단의 저명하신 분께서 박시인의 詩世界나 詩評 등 跋文(발문)을 받으면 훨씬 빛이 날 터인데도 이를 생략하고 가까이 지낸 친구들의 글을 싣고자 한다고 하여 부득이 무딘 글이지만 그동안의 우정을 재확인할 겸해서 승낙하고 말았다.
친구 박형순을 처음 만난 때는 까까머리 시절인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1973년 대전 시내 4개 학교 7명의 학생들이 모여 ‘레인보우 클럽’이라고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때 처음 보았던 것이다. 단정한 외모에 과묵하고 생각이 깊어 보이는 친구였다는 첫인상의 기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주 만나 노래도 부르고 우정을 다지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또한 친구의 고향인 충남 금산 제원으로 여름방학에 놀러 가 천내 변 둑방에서 밤하늘의 별을 본 적도 있었고, 박시인은 ‘찰턴 헤스톤’, 나는 ‘알랭 드롱’, 어떤 친구는 ‘더스틴 호프만’, ‘이소룡‘ 그리고 ’ 찰스 브론슨‘ 등 당시의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별명으로 부르며 젊은 날의 추억을 쌓아갔다.
지금도 그 모임은 作故(작고), 移民(이민) 등으로 멤버의 변동이 약간 있었으나 남은 5명이 가족동반 모임을 계속하고 있으며 기장 원거리에 있는 이 친구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특히 수년 전에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양평 근처로 우리를 초청하여 근처를 둘러보고 식사를 하는 등 의미 있는 모임을 가진 적도 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하는 친구, 취업을 하는 친구 등으로 나누어져 각자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소원해지는 시간을 갖지 않았나 싶다. 특히 하나둘씩 군대를 가게 되니 더욱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도 우리는 위문편지로 서로의 근황을 알리고 안부를 묻곤 했다.
친구 박형순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였다고 연락이 왔다.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여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하며 축하를 해 준 기억이 있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를 낙서장에 크게 써놓고 좋은 신체도 만들고 재학 중에 고시에 합격하겠다는 신념을 안고서 열심히 하고 있다네. “
- ‘77년 3월 27일 박형순이 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 후 친구는 IBK 기업은행에 입행하여 지점장 등으로 열심히 일하였고, 퇴직 이후에도 큰 기업의 임원으로서 지금까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1. 착하게, 그리고 열심인 사람

여태껏 친구와 지내며 누구를 욕하거나 비방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나와 맞지 않아 화날 때도 있고 억울할 때도 있을 텐데 내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름대로 이를 정화시키는 방법이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 아마 속으로 속으로만 삭혀 착하게 사는 그만의 비법이 문학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까지 그럴듯한 사회적 지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넉넉한 재물을 가졌던 적도 없으며, 대단한 글이나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평범하게 살았다. 어찌 보면 고생만 많이 하고, 합당한 대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면서 손해를 보는 삶이 나의 삶이라 여기며 그저 착하게만 살았다. “
-〈머리말〉중에서

2. 詩書畵(시서화)를 공부하는 사람

2012년 겨울이던가? 갑자기 전화를 하여 ‘詩로 登壇(등단)할 것 같다’고 하며 이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지방의 계간지로 등단한 바 있어 별로 아는 것이 없었을 뿐 만 아니라 친구가 詩를 쓰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半信半疑(반신반의)했던 것 같다. 그러나 2013년 봄에 [월간 모던포엠] 신인상에 당선되었다고 연락이 왔으며, 그 해 최우수 신인상까지 받고 이어 수필가, 소설가로 까지 다방면으로 숨은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書藝를 하고 있다며 栗谷先生의〈花石亭〉, 杜牧의〈山行〉, 그리고 西山大師의〈佛日庵〉등의 작품과〈無窮花〉,〈立春畵〉등 그림을 보여 주었다. 또한 최근에는 그 어려운 漢詩 五言絶句를 멋지게 지어 우리들에게 보내주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梅鵲傳春信(매작전춘신) 微風促作詩(미풍촉작시)
萬物見美觀(만물견미관) 受任歌眞氣(수임가진기)
매화와 까치가 봄소식을 전하니 부드러운 바람이 시 짓기를 독촉한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이니 임무 받아 순수한 본질을 노래하리라.
- 濟南 박형순의 자작시〈迎春自覺(영춘자각)〉全文

3. 아버지를 닮은 詩를 짓고 書畵를 하는 사람

그는 고향에서 面長을 하시고 詩人으로 불리셨던 아버지(賢山 朴鍾琦님)의 詩碑(시비)를 보며 그도 詩人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아울러 서예를 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꾸준히 內攻(내공)을 길러왔다는 사실을 그의 여러 글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평생 숫자와 살아온 은행원이었던 자신이 인생 2막의 생을 문학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닮았다는 말을 엄청나게 듣고 자랐다. (중략) 나는 당시 아버지가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중략) 언제부터인지 아버지의 옛 사진들을 보면 내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라곤 한다. 외모뿐만 아니고, 내면도 그렇다. 최근엔 성격이나 식성을 비롯하여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중략) 책을 즐겨 읽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서예를 즐기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도 틈만 나면 붓을 들고 글씨를 쓴다. (중략) 아버지의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서예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 박형순의 수필〈아버지와 나〉중에서

4. 영원히 문학을 사랑할 사람

하루에도 글을 쓰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하는 친구는 이런 면에서 천상 문학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쉽고 사소한 일상의 생각들을 시나 수필의 형식을 빌어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나아가 큰 통찰을 제시할 것이라 믿는다. 아무튼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박형순의 시세계가 쭉 크게 펼쳐지길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다.

입춘이라고/시서화에 능한 친구가/"立春大吉"이라고 써서 보냈기에/큰 吉을 담을 만한 그릇이 못돼/吉을 조그맣게 쪼개서/줄 수 없겠냐고 물으니 겨울을 덜어내고 받으란다//여기저기서/봄이 오는 소리가/들린다고 아우성이다/계절 저쪽에 있는 소리를 듣다니/나는 귀를 세워도 들리지 않아/어디서 오고 있는지/하루종일 까치발로 서성거렸더니/봄 냄새는 나지 않고/저만치서 겨울이 훌쩍거리며/짐을 쌌다 풀었다 하고 있다//
- 박형순의 시〈입춘을 보내며〉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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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억들의 그 아련함에 대해
허원실 (전 우송정보대 교수)

친구(親舊)라는 말의 뜻이 ‘오래 두고 정답게 사귀어 온 벗’이라 풀이된다면 박형순 작가와 나는 친구임이 틀림없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스물다섯의 나이에 한 살 어린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연애하던 시절 서로에게 보냈던 편지글들은 지금 읽어 보면 닭살이 돋기도 하지만 젊은 날의 우리네 감성이 그대로 녹아든 이른바 연애편지였으며 종종 치기 어린 시들이 편지에 담기기도 했었다.
초반의 조심스러운 비밀연애 시기를 거쳐 우리들의 연애가 결실을 맺을 때쯤 아내는 우리들이 나누었던 편지와 시들을 모아 작은 문집 하나를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몇 날 며칠 정성을 기울여 정성 가득한 문집 한 권을 꾸며 조심스럽게 내게 건넸다. 그 책자는 아직도 내 서재의 낡은 책장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다.
친구 박형순의 두 번째 문집 [세움에 대한 단상]의 출간에 즈음하여 내게 추천의 글 부탁을 받고 새삼스럽게 나의 연애시절 문집 이야기를 꺼낸 건 그 당시 그 문집에 실린 친구의 글이 생각난 탓이다.
나는 우리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내 인생의 멘토들에게 결혼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담은 글을 청했다. 그중 한 사람으로서 친구 박형순에게 글 부탁을 청했던 것이다.
왜 나는 친구 박형순에게 그런 글을 부탁했을까? 친구는 그 당시 아직 결혼 전이었고 당시 작가로 활동하지도 않았던 때였는데… 나는 이미 40여 년 전부터 친구의 글쓰기에 매료되어 있었던 걸까? 친구와 나는 종종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던 터였다. 아마도 친구의 군 생활 중 내가 보낸 편지가 친구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 터였으며 한창 감수성이 풍부했던 젊은 날의 우리들은 그 편지들을 통해 서로의 꿈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번 작품집에 담길 박형순 작가의 시들과 수필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단어들은 ‘오랜 기억들’, ‘삶의 아련함’, ‘인생이라는 그 아이러니’, ‘소박한 소시민의 삶’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나는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예를 갖추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다만 함께 동시대를 살아온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공감과 느낌들을 잠시 적어보려는 것이다.
작가 박형순은 따뜻한 눈을 가졌다. 늘 소외되고 외로운 작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 오롯하게 품어 담담한 언어들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잡초들의 자리다툼이 심한 숲 속
작은 꽃 하나 간신히 고개를 내밀더니
바람 소리에 놀라 모습을 감춘다

억센 숨 고르는 산 중턱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를 원망하며
풀숲에서 빨갛게 숨 죽여
먹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작고 빨간 꽃(小紅花) 부분

왜 이런 곳에 뿌리를 내렸냐고 묻지 마라
왜 이렇게 사냐고 탓하지 마라
소쩍새 우는 사연 어찌 다 말하랴

(중략)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고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쳐다보지 마라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를 맞다가
언제 뽑혀 나갈지라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나 꽃은 한순간이다
-보도블록에 핀 민들레(부분)

작가의 글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불현듯 그 어느 시절 선비들의 기개와 올곧은 성품을 마주하게 된다. 특별히 작가의 글쓰기와는 별도로 뒤늦게 시작한 서예에 매진하며 붓을 들어 시를 적고 서화를 그리는 모습 속에서 작가의 남다른 품격을 발견하게 된다.
獨立門(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매국노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의 글씨라면 당장 교체가 마땅하겠지만, 구한말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金嘉鎭) 선생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는 등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완용이 書藝(서예)에 능해 조선 후기의 명필가로 이름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행서와 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글씨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글씨라고 하는 것은 잘 썼다고 무조건 좋은 글씨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글씨를 얼마나 잘 썼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글쓴이의 인품이나 평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 글씨를 쓴 사람 자체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수집가들도 이완용의 글씨에 높은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물론 그가 워낙 유명한 명필이었기 때문에 휴지값보다는 높게 쳐주겠지만 말이다.
반면 김구 선생이나 애국지사 안중근의 글씨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보면 맑고 기품이 있으며 곧은 성품이 묻어 있다. 젊은 나이에 쓴 글씨임에도 글씨마다 그의 기개와 애국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과 겹쳐 그의 유묵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필 ‘시송개상(視松開想)’ 부분

작가의 글에도 밝혔듯이 글(위 글에서는 글씨를 두고 한 말이지만)이란 모름지기 그 글을 쓴 사람의 인격에 따라 평가돼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기교와 비범함을 앞세운 인기 작가, 인기 작품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글 속에 담긴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깊은 성찰, 그리고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작가의 생각의 깊이와 살아온 삶의 투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친구 박형순의 작품들에 대한 어설픈 나의 시선이 자칫 작가의 글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함께 했던 긴 시간들을 핑계 삼아 추천의 글로 가름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긴 코로나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 따뜻한 봄날 혹은 벌레소리 가득한 여름밤 함께 만나 밀렸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보낼 수 있기를…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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