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엄마 엄마 우리 엄마

헤스톤 2022. 4. 25. 14:15

 

 

나의 어머니 나이가 올해 아흔둘(92)이다. 어머니가 이렇게 장수하는 것에 대하여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노쇠한 모습을 보며 슬프기도 하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신체의 곳곳에서 고장 난 소리가 들린다. 최근엔 무릎이 많이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한다. 간혹 귀도 잘 들리지 않는지, 물어보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곤 한다. 최근엔 하나 남은 이(이빨)도 빼게 되어 본래 가지고 있던 이가 하나도 없다.

내 누나의 나이가 올해 칠순(70)이 되었으니, 어쩌면 딸과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나하고 막내 여동생이 대전에 살고 있는 탓으로 간혹 딸들 얼굴을 보며 지낸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래 사진은 내가 100일 되었을 때의 사진이다. 나의 사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당시만해도 사내아이의 경우는 이렇게 하의를 다 벗겨서 고추를 자랑시켰다. 이것도 그 당시엔 무슨 유행이었나 보다.

 

 

이 당시 엄마의 나이는 아직 20대 중반의 니이이었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도 아마 당시 유행이었던 것 같다. 장소는 금산 제원의 새동네라고 불리는 곳으로 우리집이다. 초가지붕의 작은 집으로 안방 문과 마루, 흰고무신 등이 보인다. 

 

아래의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의 모습이다. 

 

 

장소는 금산 인삼축제하는 곳으로 이 사진을 찍은 지도 이제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지금과 비교할 때 이 때만 해도 어머니는 70대 후반의 나이로 머리숱이 꽤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재작년 아버지 시비 앞에서 찍은 것이다. 고향 앞산의 적당한 자리에 아버지의 시비가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금산의 삼남제약 김순기 회장께서 이렇게 시비를 세워주셨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인생, 기운이 약해지는 엄마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에 애달파진다.

 

達觀

 

노인정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언제까지고 막내로 지낼 줄 알았건만

왕고참 되는 것이 이리 잠깐이라니

아직은 아흔둘의 나이가 무겁지 않다고

세개의 다리로 아파트를 돌지만

얼마 못가 쉴 곳을 두리번거린다

 

이젠 귀도 멀고 이도 성한 것 없어

세상을 대충 넓게 듣고 멀리 맛보며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하루하루를 저녁이 아침인 듯

천천히 시작하고 천천히 마무리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씁쓸한 어느 날  (0) 2022.06.05
세움에 대한 단상  (0) 2022.05.21
자가격리를 마치며  (0) 2022.04.19
작아도 괜찮다  (0) 2021.11.19
시송개상(視松開想)  (0)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