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작아도 괜찮다

헤스톤 2021. 11. 19. 12:33

 

달력의 숫자가 커지면서 바람의 무게가 느껴진다. 산에도 찬바람이 쌓여있다. 그래도 이 계절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피기 바쁘게 떨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한번 피워보겠다고 기어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들이 가상하다. 산 중턱까지 올랐다가 잡초들이 우거진 속에서 홀로 빨갛게 핀 조그만 꽃을 보았다. 지난번에 지었던 "작고 빨간 꽃"이라는 시를 읊조렸다.

 

작고 빨간 꽃

 

조용한 숲 속

잡초들의 자리다툼이 심한 곳에서

작은 꽃 하나가 고개를 간신히 내밀더니

바람 소리에 놀라 모습을 감춘다

 

억센 숨 고르는 산 중턱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를 원망하며

파란 풀 속에서 빨갛게 숨을 죽여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낙화를 독촉함에 서러움이 크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이렇게라도 피었음에 고개 숙이며

다가올 이별에 눈이 시리지만

좀 더 버티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계절 지나가는 슬픔이 묻어난다

 

이를 漢詩(한시)로 쓴 小紅花(소홍화)라는 七言節句 漢詩(한시)를 다시 옮겨 본다.

 

小 紅 花

紅花笑中雜草(홍화소소중잡초)

苦育險生山腰(고육험생착산요)

姿隱待雲通(경풍자은대운통)

季去哀感非落表(계거애감비락표)

 

빨간 꽃이 잡초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핀 것을 보니

힘들게 자라 온 험난한 삶이 산 허리에 붙어 있구나

비람에 놀라 모습을 숨겨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겉면에서 계절이 가는 슬픔을 느낀다

 

예서체로 自作詩(자작시)를 써 보았다.

 

 

산 입구 쪽으로 내려오니 중턱에 있는 꽃과 다른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다. 닮은 점은 꽃의 크기가 모두 작다는 것이다. 어쩌면 크기가 큰 꽃들은 이 날씨에 적응하기 힘들지 모른다. 작기 때문에 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꽃들도 모두 각자 나름의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뜻한 봄에 진작 꽃을 피우지 못하고, 찬 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 이 계절에 저렇게 붉은 꽃을 피웠는가 싶어 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추운 계절에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어쩜 나도 아직 늦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한 우물을 열심히 파다 보면 물이 나올지 모른다. 큰 강을 이룰 만큼의 물은 어렵겠지만, 시냇물 수준은 가능할지 모른다. 큰 꽃은 어렵겠지만, 작은 꽃을 피울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으로써는 詩(시)나 隨筆(수필) 혹은 書藝(서예)로 작은 꽃망울이라도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욕심을 내지는 않겠다. 아무리 작아도 상관없고,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설사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할지라 서러워할 필요는 없다. 노력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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