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쩜~ 좋아~ 이렇게 잘 쓰시면 나는 무얼 가르칩니까? 너~무 좋습니다. 이 글자는 내가 쓴 것
보다도 낫습니다."
서예를 가르치는 K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나는 기분이 하늘로 올라간다. 칭찬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도 춤추게 한다. 글씨에 더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쓴 글씨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내가 동네 자치회관에서 한문 서예를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었다.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내 글씨가 많이 좋아졌다고 나 스스로도 자부한다. 붓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면 그냥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붓을 들고 취미생활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가르치는 선생님의 영향도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그 선생님의
가장 큰 장점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러한 부분은 더 꺾어줘야 한다거나, 눌러줘야 한다거나, 좀 더 멈췄다가 가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친다. 때로는 이 부분에서는 더 길게 빼라거나 눕히라는 등의 말도 한다.
잘 된 부분에 대하여는 주황색 먹물의 붓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주는데, 마치 초등학생의 공책에 잘했다는
표시를 해주는 것과 같다. 사실 이 동그라미가 어디를 고치라고 하는 말보다 붓을 더 열심히 잡게한다.
수강생들에게 잘못된 부분은 고쳐주면서 열심히 칭찬해주는 K 선생님을 보며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상처들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3학년때이다. 무슨 이유인지 학기초부터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은 자주 교체되었다. 그러
면서 잠시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으로 기억하는데, 봄 소풍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우선 즐거워야
할 소풍 자체가 어렵게 진행되었다.
소풍을 가기로 한 날엔 어김없이 비가 오면서 소풍은 자꾸만 연기됐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고통은
배가 된다고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 마음은 멍이 들었다. 처음 잡은 날은 예보대로 비가 와서 연기
되었고, 다시 잡은 날은 예보와 맞지 않게 비가 와서 연기 되었다. 3번째 잡은 날도 일기가 좋지 않아
출발 직전 취소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선생님은 소풍과 관련하여 글짓기를 하라고 하였고, 나는 생각나는대로 열심히 써서 제출했다. 학생들이
지은 글을 읽어 본 선생님은 인상을 쓰더니 독설을 날렸다. 칭찬을 들은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특히 나를 비롯한 몇 명은 아주 심한 말을 들었다. 나는 기다리던 소풍이 자꾸만 연기된 것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던 사실을 그냥 나열한 것 같은데, 선생님은 나의 글을 표현이 형편없는 글이라고 하였다.
몇 명은 너무 짧게 썼거나 맞춤법이 많이 틀렸다는 이유 등으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 시절엔 툭 하면
선생님이 학생을 두들겨 팼다. 두발 상태가 좋지 않다고 때리고, 손톱이 길다고 때리고, 몸에 때가
있다고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르쳐 준 것을 잘 모른다고 때렸다. 시험도 자주 봤지만, 시험만 보면
틀린 갯수대로 때렸다. 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내가 받은 혹평은 회초리로 맞은 것보다 더 큰 아픔이었다. 당시 그 동네에서 면장을 하던 아버지
덕분도 있겠지만, 두뇌가 명석하다는 등의 칭찬에만 익숙하던 내게 쏟아진 혹평은 기분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했다.
그후 나는 글 쓰는 자체가 두렵고 싫었다. 국어라는 과목도 싫었다. 언제나 국어 점수는 다른 과목에
비해 점수가 매우 좋지 않았다. 글쓰기만 못한 것이 아니라 국어 공부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시나 수필을 쓴다고 끄적거리고 있는 지금의 내가 우습다.
초등학교 3학년을 그렇게 보내고, 4학년때 붓을 잡고 글씨를 쓰는 서예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몇 명의
글씨에 대하여 칭찬을 하였고, 그들의 글씨를 교실 뒤의 게시판에 붙였다. 내가 쓴 글씨는 한번도 게시판에
붙어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 글씨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학급 임원이면서 반에서
공부 좀 한다는 축에 낄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괜찮게 글씨를 쓴다고 생각하던 자존심은 시궁창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도 내 글씨가 게시판에 붙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창피
했다. 선생님은 여러모로 나를 우대해주었지만, 붓글씨와 관련하여서는 학년을 마칠 때까지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붓글씨와 점점 거리가 멀어졌고, 그후 서예를 배우겠다는 마음을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서예를 한다고 붓을 들고 있는 내가 우습다.
어린 아이에게 감동을 주는 어른의 말 한마디는 그 아이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그 시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 나의 상황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만약 당시 글을 쓰는 것과 글씨를 쓰는 것에
대하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을 들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글도 그렇고 글씨도 그렇지만, 어느 것이라도 누구로부터 못한다는 소리에 기죽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누구로부터 못한다는 말을 들은 것일수록 오히려 더 소질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면 된다. 아직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칭찬해주면서 누군가에게 나도 좋은 선생님의 역할을 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래 댓글 중 죽도 선생님의 요청에 의해 최근 쓴 글씨 올려 봅니다.)
(왼쪽에 있는 것들은 선생님의 체본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제가 쓴 것입니다.
잘 쓴 것에 대하여는 주황색으로 저렇게 동그라미를 쳐주고, 잘못된 것은 고쳐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