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입원을 한다고 한다.
발에 난 상처가 잘 낫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
내가 생각해도 마누라의 몸에 너무 무관심했다. 이렇게 될 때까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내가 한심하다.
마누라가 당뇨병 환자로 생활한지는 30년도 넘었다. 그동안 당뇨로 인하여 얼마나 여러 번 병원에 입원
하였는지 모른다. 약으로 혈당이 잡히지 않아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은 적도 있고,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눈동자를 뺀 후 다시 넣는 수술을 한 적도 있다. 혈당 수치를 관리하기 위해 입원을 한 경우는 너무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발에 난 상처가 한달이 넘도록 낫질 않아 입원을 한다고 한다. 처음
발에 뾰루지가 생겼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약이나 바르고 가만 놔두라고 해도 계속
만지작거리더니 상처가 점점 발 속으로 파고 들어가 결국은 손을 쓸 수 없을 지경까지 된 것 같다.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마땅치 않아 비아냥거리며 병원에나 가보라고 종용만 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대개 당뇨 합병증으로는 눈이나 발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고 하며, 발의 경우 치료가 어려워 잘못하면
절단하는 일까지 있다는 말을 들어온 터라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약 일주일 전부터는
E 대학병원에 다니면서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술을 한다는 말에 심란한
마음이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수술 당일에 병원 앞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여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세면도구와 화장품, 그리고 편한
옷 등을 챙겨서 갔다. 나도 같이 옆에 있겠다고 하니 극구 거부한다. 대단한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자신이 다 알아서 할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등을 떠민다. 자신이 퇴원할 때까지 병원에
올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고 한다. 다만, 며칠이 걸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병원 문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시간에 병원으로 갔다. 깜짝 방문으로 괜찮은 남편 흉내를 내려고 갔는데,
안내데스크에서는 그런 환자가 없다고 한다. 수술중이거나 입원한 환자 중에 마누라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기록이 없을 수 있다는 말만 안내원으로부터 들었다. 일반인의 방문을 꺼리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마누라가 무슨 유명인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
으로 혼돈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나와 살면서 입퇴원을 한두번 한 것도 아니고, 성격으로보아 입원 기록을 블라인드 처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에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아침에 이곳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는데, 그런 환자가 없다니 말이다. 깜짝 방문은 집어 치우고
전화를 걸었다. 불길한 예감대로 전화는 꺼져 있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오고 간다. 본인이 나
모르게 병원을 옮겼거나, 상처부위가 심해 수술시간이 의외로 많이 길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퇴근 후 저녁에 다시 갔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확인을 했지만, 역시 그런 환자는 없단다. 여전히 전화도
안된다. 가출과 실종, 납치 등의 단어들이 머릿속을 오고 간다. 그렇다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경찰서로
달려가는 것은 왠지 경망스러운 것 같아 인내 강도를 높였다. 그렇게 가슴을 태우며 내일 날이 밝으면
실종 신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쯤에 마누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술 들어간 후 회복될 때까지 계속
전화기를 꺼 놓고 있었다고 한다. 일부 교우들이 자신의 수술 사실을 아는데, 혹시 병원에 찾아올까봐
아예 본인의 기록이 없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입원실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가 보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수술을 한 부분은 발이 아니고 가슴이었다. 멀쩡한 가슴을 수술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나이를
먹어도 예뻐지고 싶은 여자의 속성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지만,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 병원의
동의서에 발 수술 관련이라고 하여 그냥 보지않고 사인을 해준 내 잘못도 있다. 배우자의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했던 잘못도 있다. 그래도 이런 수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연 반대했을 것이다.
내 허락없이 가슴을 수술한 것도 기분 나쁘지만, 하루종일 걱정한 것으로 인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이 타서 시커멓게 된 만큼 화가 났고, 엉뚱한 곳에 칼을 댄 것에 화가 났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계속 화를 내는 것도 나답지 않은 것 같아 수술 부위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똑같은 수술을 한 같은 병실의
환자들은 아주 잘 됐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었다. 마누라는 아파하면서 웃는다.
젊은 날의 자신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데, 역시 여자는 늙어도 여자다. 앞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냥
쭈글쭈글해져도 상관없으니 자신의 가슴을 팽팽하게 하려고 남편의 가슴을 태우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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