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금같은 사람

헤스톤 2019. 10. 18. 10:26



제수씨가 류시화 시인의 "소금"이라는 시를 적은 쪽지와 함께 소금을 보내왔다.

소금을 보고 있노라니 오래 전 성당 미사시간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신부님이 강론시간에 신자들에게

문제를 냈다.

"바닷물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정확하게 답을 제일 먼저 말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아끼는 이 성경책을 상(賞)으로 드리겠습니다. 이 성경책은 고급가죽으로 되어 있어 값도 상당히 나가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신부님이 아끼는 성경책을 가져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할머니 몇 명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머뭇거렸다. 어쩌면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3~4명의 할머니들만 이러저러한 대답을

했지만, 정답은 나오지 않았기에 결국 신부님이 설명을 했다. 그 설명과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요약

하면 이런 것이었다.

"바닷물에는 염분이라는 것이 있는데, 염분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주요 물질들의 전체 농도를 크기로 표시

한 것으로 단위는 psu(practical salinity unit)나 천분율인 퍼밀(0/00)을 쓴다고 한다. 사실 퍼밀과 psu

사이에 값의 차이는 없다. psu는 전기전도도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염분을 쟀다는 의미를 가진 단위

인데, 1981년 해양학자들이 유네스코 보고서를 내면서 국제적인 표준 단위 규정에 따라 염분 단위를 퍼밀

에서 psu로 바꿨다고 한다. 

염분 농도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태평양보다는 대서양이 좀 더 높고, 전 세계 바다의 평균 염분도는

약 34.7psu이다. 그리고 이들 염분 조성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식염으로 전 염류의 약 80%를 차지한다.

따라서 바닷물에 있는 염분을 약 35퍼밀이라고 할 때 백분율로는 3.5%이고, 그것의 80%인 2.8%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소금이라고 본다. 즉, 약 3%라고 볼 수 있다."



신부님은 이런 설명과 함께 이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질문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가톨릭 신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신가요?" 

이 질문에는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말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는 바람에 아무도 성경책을 상품으로 받지는 못했다.

"예, 맞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수는 최근 해마다 계속 늘어 국민의 약 8%(2018년말 기준으로는

11.1%라고 함)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과 함께 신부님은 강론을 이어갔다.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 중 3%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 사회는 썩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가 약 8%인데,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 사회는 절대로 

부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우 건전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소금 역할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지 마십시오.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미루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신자들 모두가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강론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3%안에 들어가는 사람일까, 아닐까를 생각하면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나는 무슨 역할을 했고, 정의, 공정, 평등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나는 무슨 역할을 했나?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한 것 빼고는 한

것이 없다.

"소금"이라는 시를 보면 "소금은 바다의 상처이고, 아픔이고, 눈물"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개천의 붕어, 

가재로만 살았을 뿐이다. 국가의 주요 정책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어느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사회에 짭짤함을 주는 

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류시화 시인은 『지구별 여행자』에서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라고 성인의 말을 인용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소금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싱겁게 살아온 자신을 위로하며 앞에

놓인 "소금"을 한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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