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만약에

헤스톤 2019. 8. 27. 16:04



이순을 넘긴 이후로는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자꾸만 짧아진다. 무엇보다 몇 년 전부터 내가 근무

하는 업체들은 법정관리업체인 탓으로 일정기간 이상 근무할 수도 없다. 그래도 최소 6개월이상은 근무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 봄에 근무를 하게 된 업체는 예상을 뒤엎고 조기 파산했다. 그 업체는 강남에

소재하여 대중교통으로 출퇴근도 용이하고, 근무환경도 좋은 편이어서 내심 오래 다니길 바랐는데,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 일이다. 업체 규모도 상당히 크고, 자금도 많이 확보되어 있어서 정상

업체로 살아날 줄 알았는데, 다른 사건에 발목이 잡혀 일찍 폐지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나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렇게 실업자 생활을 2개월 정도 하고 있을 무렵 2군데서 전화가 왔다. 서울 근교라고는 하지만, 한 곳은

I시에 있는 업체이고, 또 한 곳은 P시에 있는 업체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택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는지 뒤돌아 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 유리하지

못한 쪽으로의 선택이 더 많았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쩜 그렇게 선택하였던 모든 것들이 운명

인지도 모른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세상에 만약이란 약은 없다. 만약 그런 약을 만들 수만 있다면 제조자는 금방 갑부가

될 것이다. 만약 '지금 학생'이라거나, 만약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과 같은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면

세상은 어찌될까?

지금도 중학교 영어 시간에 가정법을 가르칠 때 "If I were a bird, I could fly to you."라는 문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학생들은 그 문장을 무턱대고 외웠다. 그리고 당시 이성에게 펜팔하는 친구들은 이 말을

어김없이 사용했다. 내가 만약 새라면 너에게 날아갈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나에게 날개가 없어서 보고

싶은 너에게 지금 갈 수가 없다는 뜻으로 당시 아무 생각없이 쓰곤 했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우선 이 문장에서 사람이 새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나(I) 다음에 am이나 was가 아닌 were

라는 엉뚱한 be동사가 사용된다는 말도 배운 것 같다.

마찬가지로 "If I were rich, I could buy an expensive car."라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약 돈이

많다면 비싼 차를 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말로 돈이 없어서 비싼 차를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즉, "As I am not rich, I cannot buy an expensive car."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실생활에서는 하나마나한

말로 만약이란 말은 자신의 현 처지를 못 마땅하게 여길 때 사용하는 말에 불과하다.




일반 회사 생활에서의 승진도 그렇다. 약간의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상사와 의견 다툼이

있던 시절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면 현재 나의 위치가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자존심을

조금만 죽였다면 인생이 확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큰 후회는 없다. 그리고 높이 올라간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최근 모 장관 청문회와 관련된 것만 봐도 그렇다. 만약 그가 장관 후보로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치부를 드러내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장관이 뭐라고 아들이나 딸, 마누라, 친척의 지저분한 것들이 

다 드러나고 국민적 지탄이나 멸시를 받아야 된단 말인가. 

오래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어느 사람이 생각난다. 만약 그가 높은 자리로 가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일찍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취와 우울증은 어쩜 친구인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얻은

이후 몰려오는 허탈감이 얻지 못한데 따른 분노보다는 무게가 작을지 몰라도 사람마다 자기가 감당할

있는 그릇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만 만약은 없다. 실생활에서 만약의 이후는 없다.   


그나저나 이번 나는 2개의 업체중 근무할 업체의 선택을 두고 고민하였다. 그리고 정확한 정보라고 포장된

말을 믿고 많은 고민끝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P시의 업체를 선택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고달픔이 시작

되었다. 거리상으로만 유리하다고 선택한 자체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우선 소음과 먼지 등 환경과

관련된 것은 차치하고, 우선 내가 할 일을 진행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뜻대로 일을 진행시키지 못함에

따른 답답함이 앞을 막으며, '만약'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자꾸만 선택하지 않은 업체가 떠오른다. 만약

그 업체에 갔다면 지리적으로는 좀 멀지 몰라도,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은 모른다.

무엇보다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만약'이라는 말을 아무리 만지작거려봐야 소용없다. 

따라서 설사 유리하지 못한 선택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입장을 좀 더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기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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