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제 사건

헤스톤 2018. 12. 4. 10:23


 

 

사람마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이 똑같은 글을 읽고도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특히 그 글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계된 글이라면 일반적인 글에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상재한 나의 첫 졸저인 "기울어짐에 대한 단상"이라는 책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서도 그러한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은행의 입행동기들로부터는 "동사무소"라는 수필을 비롯하여 은행업무와 관련된 글에 대한 언급이 제일

많았고, 은행 퇴직 후 다녔던 회사 직원들은 "더미필름의 한마디"라는 시를 비롯하여 회사와 관련된 글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그리고 J은행 임원 출신인 어느 분은 제일 뒷부분의 단편소설 "구멍난 행로"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와 주인공 남편이 같은 나이로 은행원 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전에 사시는 작은 고모는 책을 읽고 편지를 보내왔다. 책을 읽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면서 내가

학교다닐 때 옷 한벌 못해준 것이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는 편지이었다. 고모의 손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짠해졌다. 고모는 아마 "옷 사러 가는 날"이라는 글을 읽고 여러가지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조카를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의 글씨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한편 홍천에 사는 처제는 자기 남편과 관련된 글인 "이름없는 봉투"라는 글이 가장 마음속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장모님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썼던 글로 이름을 적지 않은 "부의" 봉투와 관련된 글로 직접

자신과 관련된 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봉투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책을 상재하면서 책값이라는 명목의 소액 봉투를 몇 개 받았다. 

나 스스로 작가라고 떼를 쓰고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나는 유명작가도 아니고, 내 책이

서점에서 잘 팔릴 책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누가 봉투를 주면 오히려 부담이 된다. 솔직히 내 책을 누가

읽어주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소액이라도 책값이라며 주는 봉투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데 몇 명의 팬(?)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문제는 장모님 장례식에서 있었던 해프닝과 차원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또 "이름없는 봉투"가 발생하여 나를

괴롭혔다.

 

 

약 3주 전의 일이다. 내가 사는 곳의 가까운 곳에 아내는 자주 가고 나는 가끔 가는 골프연습장이 있는데, 

그 연습장의 아내 사물함에 누군가가 봉투를 넣고 갔다.

봉투 겉에 "첫 책 발간과 금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라는 글과 함께 얼마간의 돈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누가 봉투를 넣었는지 이름이 없다. 실수로 이름을 적지 못한 것이지, 아니면 일부러 적지 않은 것인지는

모른다. 무엇보다 웃기는 것은 그 골프연습장에는 내 사물함도 있는데, 왜 아내의 사물함에 넣어 놓았는

가와 나와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그 연습장의 사장님이 계속 자리를 지켰음에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부에 CCTV라도 있었다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지 않아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전날에도 그곳에서 골프클럽을 사용했기 때문에 전날 오후에 왔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습장

사장님과 함께 몇 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 놓다가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냈다. 

내가 책을 발간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금상을 수상하였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력한 용의자에게 즉각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아니란다.

그는 내가 알고 싶은 것과 상관없는 말만 늘어 놓는다. 

이번에 자기가 이사간 집에서 바라 본 인천 앞바다의 풍경이 좋으니 놀러오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거실에서 바다가 훤하게 보이고, 밤에도 불빛들이 바다위에서 뛰어 놀아 멋있는 시를 건질 수 있다는

말로 전화가 길어진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니 그는 범인(?)이 아니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전날 온 사람들 전체를 상대로 탐문수사를 시작하였다.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렇게 1주일 이상이 흘러갔다. 그런데 범인의 윤곽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답답함의

지수는 자꾸만 올라갔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범인의 자수를 바라면서 공개수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3주째 공개 수배중이다.

아직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사건은 장기 미궁으로 빠질지도 모른다. 현재로써는 장기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많다.

어쩌면 이것 말고도 내가 신세진 것들 중에 이렇게 저렇게 모르며 지나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세상이란 알고 싶은 것 모두 알면서 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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