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엉뚱한 생각

헤스톤 2018. 4. 13. 17:11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큰소리가 난다. 노인들이 싸우고 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이 좀 젊게 보이는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친다. 앉아 있는 사람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노인이라는 것이 

대단한 자랑도 아닌데 저렇게 다투는 것을 보니 심란해진다. 늙고 싶지가 않다. 누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늙는 것이 아니고 익어간다고 했지만, 솔직히 그것은 자신을 위로하는 말에 불과하다. 늙는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늙었다는 것

 

눈앞으로 지렁이가 날라 다니고

귓속에서 파도가 으르렁거린다

등에서는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좋다는 것을 먹어도

배의 주름만 깊어질 뿐

지식의 근육은 잘 늘지 않는다

남의 살이 다가와도 반갑지 않다


머리는 고집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얕은 생각들만 뛰어다닌다

말에 군더더기가 자꾸만 묻어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

아는 것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다 


지하철에서 노인들의 싸움 구경을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지하철이 만약 철로를 벗어나게 되면 어찌될까?"

당연히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길을 따라 가지 않으면 안된다. 정해진 길을 이탈

하면 죽음이나 큰 부상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생길도 그런 것일까?" 

인생길도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죽음으로 돌진하거나 실패작이 되는 것일까?

인생 실패작들은 모두 올바른 길 내지는 정해진 길을 걷지 못해 그렇게 망가진 것일까? 

오히려 정반대인 것 같다. 사회에서 출세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바른 길을 걸은 것 같지가 않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청문회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오히려 도덕과 거리가 먼 인간들이 출세한 세상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국방의 의무를 소홀히 한 자들이 출세한 세상

이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보다 머리띠를 두르고 화염병을 던진 이들이 출세한 세상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정도를 고집한 인간들이 출세한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따라서 사람의 길은 지하철처럼 정해진 길만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어려서부터 선생님 혹은

부모님이 가르쳐 준대로 가지 말았어야 한다. 그들이 가르쳐 준대로 가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공확률이 높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현실이 그렇다. 가장 큰 이유는 정상적인 나라 혹은 

올바른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인생에서 정해진 길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대개 모든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바른 길(正道)만 걷도록 배웠다. 그래서 인생 길에는 바른 길과 바르지 

못한 길만 있는 것으로 알고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즉, 인생 길에서는 정도와 정도가

아닌 길만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바른 생활의 사람들은 정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 일이 나는

줄로 안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면 대개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해도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 옳은 말은 아니다. 요즘 육십대는 구한말의 사십대보다도 더 젊다.

그래서 그런지 육십이나 칠십을 먹어서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를 가진 자들이 많다. 몸이 젊기 때문

인지 생각하는 것도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사기나 폭행 등 각종 범죄를 일으키는 자들도 많다.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해도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이순의 나이를 가지고는 어디가서 어르신 대접을 받을 수도 없고, 살아온 인생경험을 들려줄만한

나이도 못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혹이나 지천명의 나이 때보다는 사회적 여건상 유혹도 많이 줄고 

어지간한 조심이 몸에 배여 정도를 벗어날 확률이 낮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여겨진다. 글자 그대로 귀가 순해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

이다.


정도를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나에게 어느 날 친구 한명이 정도도 좋지만 현도(賢道)를

걷도록 해 보라는 말이 확 다가왔다.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른다.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에서 현명한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정도가 꼭 현도가 아니듯이 현도가 꼭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많은 경험으로 배운 그동안의 지혜를 바탕으로 좀 더 현명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현도라는 말을 생각하다보니 또 다른 길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도는 아니지만

선도(善道)나 미도(美道)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신도(新道)도 있을 이고 향도(香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늙어가면서 향기가 나는 것은 힘든 것일까?

노약자석이 조용해졌다. 엉뚱한 생각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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