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6

헤스톤 2018. 1. 4. 09:40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린 것 같다.

연말, 연초가 되어 여기저기 식사 약속이 많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게으른 탓이다.

그나저나 좀 더 힘있게 글을 끌고 가야하는데, 클라이맥스도 가기전에 지쳐서 못 올라갈지도 모른다.

이는 나의 한계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는 다음호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6. 불행속에서 보이는 빛

 

  

   만원의 계산착오를 구실로 늦가을의 밤을 보내며 인연이 시작된 희운과 선자는 날이갈수록 하루라도 안 보면 몸살이 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살아온 문화의 차이가 있어 사소한 다툼이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장애가 되지는 못했다. 은행 직원들과 거래업체들의 축복속에 사귄지 1년이 안되어 결혼식도 올렸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아들과 딸인 진남이와 선남이도 2년 터울로 낳아 키우면서 열심히 저축도 하며 살았다. 평범한 생활만 계속된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의 가구로써 비교적 큰 어려움없이 보낸 세월이 행복인줄도 모르면서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희운이가 명퇴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겠지만, 한참 애들이 자랄 때 가장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그 가정의 미래가 주저앉는다는 것을 선자는 절실히 깨달았다. 돈이란 것이 한 가정을 유지하는데 이렇게 크게 작용할 줄 몰랐다. 더구나 최소한의 기본생활은커녕 거의 매일 빚쟁이들한테 독촉을 받는 생활은 참기 힘들었다. 애들이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지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었다. 가장의 쓸데없는 욕심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한 가정을 이렇게 밑바닥으로 떨어뜨리게 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라는 것은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자의 고달픈 생활은 멈출 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희운이가 구속된 이후 선남이가 제과점이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엄마의 짐을 조금 덜어준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선남이가 과거 방황하던 생활을 잊고 긍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선자로써는 고마운 일이었고, 선남이는 밤에 돈 벌러 다니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다. 또한 아빠를 그리워하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선남이를 보며 선자도 자세를 바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청산하였다. 어려움속에서도 선자가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박세근의 도움도 있었다. 물론 박세근이 아무 조건없이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자금을 융통하기가 마땅찮은 선자가 간혹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곤 하였다. 


   박세근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배우자와 이혼을 하였다는 것 외에는 흠 잡을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간혹 친척이나 친구들과 통화하는 내용을 보면 외로움이 가을비처럼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선자는 세근을 볼 때마다 많이 흔들렸다. 그를 향한 마음이 타올랐지만 쉽게 다가서지는 못했다. 사실 세근도 은근히 선자에게 끌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가정의 평화를 밟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 같았다. 친구로 지내자는 세근의 요청에 따라 우정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간혹 만나곤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남녀간의 우정이란 것은 끈끈하게 이어지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서로 아무 연락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다만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세근의 충고에 따라 선자는 정기적으로 희운이가 있는 교도소로 면회를 가곤 했다.

  

   행복과 불행에 관계없이 시간은 어김없이 간다.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계절이 몇 번 바뀌더니 희운이가 출소하였다. 희운이가 출소한 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통닭을 뜯었다. 희운은 선자의 거칠어진 손을 만지작거리며 미안함을 표시하였다. 진남이와 선남이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많이 힘들지만 진남이가 고시공부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책임진다는 말도 했고, 선남이에게는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대학교 진학 준비를 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진남이는 지난 학기부터 휴학을 한 상태로 자신에게 입영통지서가 나왔음을 알렸고, 선남이는 제빵사의 길을 가겠다면서 자기 앞길은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고 하였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생각하니 희운과 선자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고시공부를 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는커녕 학교 등록금도 제대로 못 준 선자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희운은 도저히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빚쟁이들의 독촉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무엇인가를 빨리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자리가 희운을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희운은 전과자이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방의 고속도로 터널공사에 나가게 되었다. 선자에게는 그냥 지방에 일거리가 있어 일주일 후에 오겠다며 나갔다. 희운이 나간지 이틀이 지날 무렵 밤이었다.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선자는 직감적으로 좋지 않은 소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권희운씨 댁이죠? 여기 A병원인데요. 빨리 와 주셔야겠습니다."

   희한하게 좋은 일은 예감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나쁜 일은 예감이 틀려본 적이 없다. 지방에 일거리가 있다고 할 때부터 가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말렸었다. 그리고 꿈자리도 뒤숭숭하였다. 전화벨 소리만 듣고도 선자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크게 다친 것은 아닌거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다리를 많이 다쳤습니다."

   선자는 서둘러 A병원 응급실로 갔다. 야간에 공사를 하다가 뽀족한 철관이 희운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하는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희운이가 출소한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선자는 남편 병 간호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졌고, 빚쟁이들한테 다시 시달렸다. 박세근이가 머릿속을 뱅뱅 돌았지만 연락을 하지않고 살은 지가 이미 반년이 넘었기에 그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남편이 원수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희운이의 병원 생활은 오래 걸렸다. 일반병실로 옮긴 이후 희운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선자에게 부동산 관련 책들을 사 달라고 하여 '부동산중개사' 시험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머리가 좋은 탓인지 한번 응시로 시험에 합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진남이의 군 생활은 진남이에게 큰 기회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평탄한 생활은 아니었다. 특히 훈련소에서 나와 행정 특기병으로 후반기 교육시 각 과목을 평가할 때 마다 언제나 1등이었는데, 졸업할 때보니 2등으로 변해 있었다. 돈 없고 빽 없는 탓인지 누군가 조작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동기생들도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군대 특성상 이의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대개 1등은 언제나 서울 이남으로 자대배치를 받는데, 결국 진남이는 전방부대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일류대 법학과에 다녔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 탓인지 처음엔 연대본부의 행정병으로 근무하다가 연대장의 눈에 들어 공관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진남이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군에 입대한 후 선자는 희운의 병 간호를 하면서 편지를 자주 써서 부쳤고, 그 편지들은 진남이가 다른 생각없이 열심히 군 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공관병의 생활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개인 자유시간이 많아서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연대장 부부도 진남이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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