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4

헤스톤 2017. 11. 29. 22:11

 

요즘엔 괜히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간접적으로 알게 된 누군가를 모델로 삼은 것은 분명하지만,

"과욕이 부른 불행"에 대하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교훈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왠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바닥을 모르는 수렁

 

   가족들 누구도 일찍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고, 집은 언제나 썰렁하였다. 특히 희운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간혹 들어와서는 선자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돈'이라고 하면서 만원짜리 몇 십장을 뿌려주곤 하였다. 금액은 들쑥날쑥이었고 생활비로 충분하지 못한 금액이었다. 진남이와 선남이를 뒷바라지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선자의 식당 보조 일과 노래방 도우미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희운이가 바지 사장으로 있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하여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이서찬의 행위에 대하여 희운이 의심을 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 몇 달은 이서찬이 자신을 속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실제로 정상적인 사업으로 확신했었지만, 날이갈수록 실체는 보이지 않고 허위광고만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늘면서 이서찬과 결별을 하기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중에 사기혐의로 고소가 된 것이다. 모든 법률적 행위는 희운의 이름으로 했기 때문에 고소당사자는 모두 '권희운'으로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모든 기획을 한 이서찬은 희운의 이름으로 된 통장과 돈만 챙기고 희운은 서찬이 파 놓은 함정에 빠졌다. 억울함을 이곳저곳에 호소하였지만 법은 냉정하였다. 희운에 의해 다수의 피해자가 생겼고, 이들은 엄벌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희운은 친척들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사건이 된 다음에야 알게 되었지만, 서찬과 그 일당은 사실 부동산 개발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할 의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투자후 2년안에 개발 완료'나 '원금 3배 보장' 등의 내용들이 모두 허위이었다. 수많은 투자자들을 기망하였던 것이다. 결국 희운은 '특정경제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선자는 희운이 구속되면서 하늘이 노랗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희운에게 모질게 대했다는 생각으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희운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미워도 남편은 남편이다. 어쩌다 착한 희운이가 교도소까지 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니 자신에게 큰 잘못이 있는 것 같았다. 집은 결국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약 2억원의 빚만 떠안았다. 달동네의 사글셋방으로 이사하는 날 선자는 하루종일 울었다.  

   다행인 것은 희운이가 구속된 이후 방황하던 딸 선남이가 집에 꼬박꼬박 들어왔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진학은 진작에 포기한 상태로 밤 늦게까지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대학교에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선자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날그날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애들만 없었다면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약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던 안경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 언니! 지금 A 노래방에 갈 수 있어? 나는 다른 곳에 가 봐야 될 것 같아서 그래."

   이 업계에서 인기가 좋은 경화는 찾는 손님이 많았다. 아마 다른 노래방에서 경화를 급히 찾거나 아니면 만날 때마다 많은 돈을 준다는 단골손님과 어디 다른 곳에 갈 일이 생긴 모양이다.

   "예전에는 언제나 나를 잘 데리고 다니더니 왜 요즘엔 연락을 자주 안해?"

   "언니가 더 잘 알잖아. 노래방 업주들이 언니를 부담스러워 하는 걸."

   "그럼 오늘은 어떻게 전화했어?"

   사실 선자는 지금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님에도 슬쩍 한번 튕겨본다. 더구나 몇 시간전에는 어떤 사채업자로부터 협박도 받았다. 내일까지 밀린 이자 일부라도 갚지 않으면 진남이와 선남이에게도 독촉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수한 협박을 받았지만 애들까지 입에 올리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그런 말까지 듣고보니 앞뒤 가리지 않고 돈 빌릴만한  곳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경화야! 너 나한테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또 얼마나 필요한데? 근데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해. 지금 나 바쁘거든. 지금 언니가 A노래방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나 말해. 언니가 안 된다면 다른 곳에 빨리 전화해야 되니까." 

   선자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선자는 가겠다고 하면서 내일 아침에 전화하겠다고 하였다. 이번에도 기댈 곳은 경화밖에 없다는 것이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A노래방에 급히 택시를 타고 갔다.

  

   의외로 손님이 한 명밖에 없는 방이었다. 대개 단체로 아니면 최소 2~3명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달랑 한 명이 와서 도우미를 부른 것이다. 흰 피부에 눈썹이 짙었고 점잖게 생긴 사람이었다. 일단 선자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온 것을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하지만, 선자 자신이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손님은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와 '조용필'의 '허공'이라는 노래 2곡을 부르더니 그냥 옆에 있다가 시간되면 가라고 한다. 오늘따라 그 노래들이 매우 슬프게 들렸다. 노래부르는 그 사람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봉사료를 선불로 하겠다며 먼저 주길래 시간이 끝나면 달라고 하였다. 오늘 매우 괴로운 일이 있었다고 하면서 사는게 그냥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저보다는 나을거예요. 저같이 이런데 나와서 웃음이나 노래를 파는 사람보다는 낫겠죠."

   "그럴까요. 나에게 위안이 될지 마음이 더 무거워질지 모르지만 아주머니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다 하시고, 노래도 실컷 부르시면서 나에게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스트레스나 풀고 가세요."

   이상하게 선자는 잘 생긴 이 남자의 넉넉한 마음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갔다. 지금까지 모르는 누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지난 몇 년동안의 일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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