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3

헤스톤 2017. 11. 21. 09:43


최근 회사일도 그렇고 각종 모임도 많다보니 소설을 쓰는 시간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글에 좀 더 긴장을 불어 넣어야 되는데..

된장국에 된장만 잔뜩 풀어 넣어서는 제대로 맛을 낼 수 없기에 약간의 양념을 넣다보니..

당초 예상보다 글이 조금 길어질 것 같다.


 

 

3. 수렁으로 빠져들고

 

  

   선자의 노래방 도우미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어느 정도 신체적 접촉은 감수할 각오를 하였지만 짖궂은 손님들이 의외로 많았다. 끈적거리는 손길이 다가오면 기분상하지 않게 몸을 비틀거나 일어서서 춤추는 동작을 취하며 몸을 흔들곤 하였다. 그래도 불쾌한 접촉을 피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선자에게 노래를 시키는 손님도 많았다. 노래실력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부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었기에 잘 버틸 수 있었지만, 어느 때는 노래를 계속 시켜서 진이 빠지곤 했다.

   그리고 나이를 물어보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동안을 앞세워 30대라고 말을 하곤 하였지만, 사십을 넘긴 나이로 이런 곳에 나온다는 자체가 창피했다. 어차피 생계를 위해 뛰어든 것이기 때문에 탬버린도 열심히 흔들면서 손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경화처럼 젊지도 않고 애교도 부족한 탓인지 단골로 찾는 손님은 없었다. 하지만 간혹 팁도 받았다. 식당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받는 돈을 1시간만에 벌 때도 있었다. 노래방 업계에서 경화의 인기가 좋아 선자는 세트로 경화의 덕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날이갈수록 노래방 측에서는 경화만 찾고, 선자는 공치는 날이 많아졌다. 경화는 간혹 단골 손님들과 다른 곳에도 가는 것 같았다. 선자는 자기에게 다른 곳에서 은밀하게 만나자는 손님이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돈을 잘 버는 경화가 부러웠다.  

 

   희운은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본 이후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약 한 달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약 한 달 동안 부부싸움도 끊이질 않았다. 사실 부부싸움이라기 보다는 선자의 일방적인 공격이었고, 아들 진남이와 딸 선남이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얼굴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진남이는 그래도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에 매달리는 것 같은데 선남이는 밖으로 돌면서 품행이 좋지않은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네명의 가족끼리 서로 얼굴을 보는 시간을 줄이려 했고 안위를 묻는 일도 없었다.

   집안에 온기라는 것은 모기 발톱만큼도 없었다. 선자는 과거 희운이 은행에 다닐 때에도 그저 그렇게 사는 모습에 불만을 가졌었는데, 이제와서 보니 그때가 행복이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는 그것이 온기인 줄도 몰랐다. 집에 활력이 넘칠 때도 있었는데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들 진남이가 일류대 법학과에 합격했을 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장만했을 때는 세상이 다 내 것 같기도 했는데, 이젠 집에 있어도 집이 집같지 않았다. 사실 집도 언제 비워줘야 될지도 모른다. 주식 신용거래 금액 상환 및 생활비 등으로  이미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선자는 식당일 등을 한다고 하면서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곤 하였다. 자정을 넘겨서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자주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희운은 한때 '주식투자의 귀재'라는 소리까지 듣던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였다. 얼굴만 보이면 모질게 쏘아대는 선자의 가시돋힌 말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희운은 주식투자로 손해 본 것을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짝꿍이었던 이서찬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이서찬은 동창사이에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었다. 주식투자 재도전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서찬에게 접근을 한 것인데 그는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이서찬은 제 2금융권에서도 해 줄 수 없다는 집의 후순위설정을 하고 1억원을 희운에게 빌려 주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여겨지는 밑바닥에서 선자에게 일부라도 돈을 줄 수 있었기에 동창인 이서찬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희운은 선자에게 5천만원을 주고 나머지로는 그동안 눈 여겨 보았던 주식에 투자할까 말까 망설였다. 이때 이서찬은 희운에게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재개발사업 등으로 큰 돈을 벌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희운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희열을 느꼈고 자신도 곧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희운이 자력으로 무슨 사업을 하기에는 의욕도 저하되어 있었고 밑천도 없었지만, 이서찬의 지시 및 도움으로 부동산개발 사업자등록과 함께 테마파크 개발을 한다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희운은 언제부터인가 이서찬과 자주 어울려 다녔다. 간혹 이서찬이 몰고 다니는 벤틀리를 옆에 타고 다니면서 자신도 그처럼 폼을 잡을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누라와 자식들에게 떳떳한 가장의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희운은 사실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서찬의 지시에 따라 개발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을 설득하러 다녔다. 광고나 인터넷 등에 일부 허위나 과장도 있었지만 희운의 성실한 설명 때문인지 투자자들이 계속 늘어났다.

  

   이서찬은 가끔 경마장에도 희운을 데리고 갔다. 경마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서찬도 경마에서 큰 금액을 베팅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16배의 고 배당을 받는 날도 있었고, 옆에서 지켜보는 희운이 더 흥분하기도 하였다. 서찬이가 경마에서 돈을 잃을 때도 많았지만 문제는 따고 잃고를 떠나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희운이 혼자서도 경마장에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박에 빠져드는 가장 큰 원인은 누구나 그렇듯이 그 자체에 스릴이 있다. 그리고 돈을 잃을 때도 있지만 딸 때도 있다. 문제는 딸 때보다 잃을 때가 더 많고, 따는 금액은 얼마 안 되지만 잃는 금액은 크다는 것이다. 희운은 돈을 잃으면서도 어느덧 중독이 되었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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