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00년 후 어느 날(5)

헤스톤 2017. 3. 10. 12:08

 

 

어느덧 짧은 시계바늘은 9자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연말이 다가올수록 더 빨리 간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저녁 식사도 하지 못했다. 이러하니 23C인 지금 시대에 권한은 있지만 무슨 특권도

없으면서 일반 국민들보다 훨씬 큰 의무만 주어진 대통령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대동강가의 "국대성"(10성급 호텔)에서 각국 대사들과 만찬을 하기로 했는데

이미 취소되었다. NSC 요원들인 약 30여명의 참석자들과 도시락으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도시락 값도 국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NSC 요원이라고 무슨 특혜나 특권은 하나도

없다. 오늘은 요원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더치페이로 하지 않고 내가 냈다. 공직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한 봉사와 희생정신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이 소식을 들으면 집사람은 또 잔소리를

것 같다. '왜 남들 다 안한다고 하는 대통령 같은 것을 해가지고 집안을 거덜내느냐'고 투덜댈 것이다.

 

각국의 방송국에서는 "구센티프"의 피살소식을 계속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꾸만 내 이름도 거론된다.

거론되는 이유는 접경지역의 분쟁때문에 내가 내일까지 사과를 요구한 탓과 인접국가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를 그나라의 대통령으로 모시기 위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때문이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난리다.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많은 나라들에서 나를 자기나라의 차기 대통령으로 영입하려고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INT가 먼저 강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런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나를 대통령으로 영입하려고 각종 특위 등을 구성화여 구체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나라들은 남극쪽

2나라와 북극쪽 2나라를 포함하여 정확하게 22개국이다.

이제 내일 하루만 지나면 2218년이다. 정확하게 22개국이 밤 늦게까지 방송을 통하여 지랄을 떨고 있다.

입에서는 내년도 숫자의 뒷부분이 저절로 나온다. 

 

 

너무 피곤하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인접국가의 대통령이 피살되는 긴급상황으로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시키느라 해가 저문 오후의 시간

들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시급한 결재 몇 개를 마무리하고 23시가 넘어 서재로 돌아오니

나의 애견 "베리"(진돗개)가 이산가족 상봉이나 하는 것처럼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반긴다.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여러 행사가 있는데 몇 가지는 취소시켜야 할 것 같다. 150살 이상

되는 어르신들과의 오찬 모임과 가족 및 친척들과의 저녁 만찬, 한해를 마무리하는 타종 모임 등을 제외

하고는 취소시킬 예정이다. 오전에는 오늘 쓰다 말은 신년사를 좀 다듬고 쉴 예정이다.

신년사에는 내년 우리나라가 주최국이 되어 치르게 될 "월드컵"에 대한 내용도 살짝 담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소원중의 하나는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우승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약 100여년 전에 결승까지

진출한 적은 있지만 우승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최근의 국력이나 선수들의 기량으로 볼 때는 우승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지만 공은 둥글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아마 200년후에도 기대하기 힘들고, 월드컵에서라도 우승을 한번 하고 싶다.  

 

오후에는 원격으로 건강진단도 받으려고 한다. 최근들어 여기저기 좀 불편하다. 아직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삐걱거리면 안되는데, 지난 3년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너무 무리한 것같다.

아무리 피곤해도 취침전 독서는 해야 하기에 책을 들었다. "2424년 태양계"라는 미래 예언서이다. 지금부터

약 200년후의 일인데 흥미진진하다. 그때가 되면 눈이 커지고 입 크기는 줄어드는 등 얼굴모양도 변경되고,

인체구조도 많이 변형이 되어 100M 달리기를 7초대로 달리는 선수도 등장하고, 마라톤을 1시간 30분대로

뛰는 선수도 생길 것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은 150살이 될 것이고, 먹거리도 이상한 것으로 변할 것이며,

미인의 기준도 많이 변할 것이고, 우주에서의 생활이 일반화되어 최근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공중소유권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잠재우는 로봇이 나를 데리러 왔다. 아니 벌써부터 와서 몇 번 사인을 주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 도저히 안되겠는지 로봇이 나를 강제로 안고 간다.

이제 꿈나라로 갈 시간이다. 이렇게 2217년 12월 30일은 지나갔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도 없고 짧다고도

할 수 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오늘보다는 분명 나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내일이다. 끝.

 

(사진은 친구인 말러 임성환 님의 작품임)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멍난 행로 2  (0) 2017.11.08
구멍난 행로 1  (0) 2017.10.29
200년 후 어느 날(4)  (0) 2017.03.03
200년 후 어느 날(3)  (0) 2017.02.17
200년 후 어느 날(2)  (0) 2017.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