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2

헤스톤 2017. 11. 8. 11:59

 

좀 더 빠르게.. 속도감과 더불어 긴장감을 주며 진행시키려고 했는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을 생략할 수 없어..

예상보다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2. 추락을 회상하며

 

   아들 진남이가 군대 영장을 받아놓고 집을 나가 애를 태우다 입대하기 전날 돌아왔다. 약 1개월 전에 나갔던 아들이 입대를 하루 앞두고 돌아온 것이다. 사실 그동안 집안에 우환이 겹쳐 진남이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지만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선자는 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속이 탔다. 아들이 말없이 집을 나간 이후 곧 들어오겠다는 전화가 오기는 했지만 군 입대일자가 다가올수록 더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그런 아들의 얼굴을 보며 반가움과 현재의 비참함에 선자는 눈물을 흘렸다.

   입대하기 전날 밤이 되어서야 돌아온 진남이가 선자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일단 아쉬운대로 이 돈으로 당분간 생활을 하셨으면 해요."

   "이게 무슨 돈이냐?"

   "지난 한달 동안 노가다해서 번 돈이예요."

   그동안 진남이는 일당을 많이 준다는 공사판을 찾아다니며 일을 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부모에게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몸을 혹사시키면서 입대하기 전날까지 벌었다. 그동안 진남이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를 생각하니 선자의 가슴이 무너진다. 선자는 상처가 이곳저곳 나 있는 진남이의 손을 만지작 거리며 훌쩍거렸다.

   "미안하다. 부모 잘못 만나 네가 이렇게 고생을 했구나."

   "제 걱정은 마세요. 씩씩하게 군 생활 잘하고 돌아올께요. 군인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나오는대로 송금할께요."

   "그런 걱정은 말아라. 네 몸이나 잘 건사해라. 이 에미가 못나 미안하다. 우리 아들 고생을 너무 시켰구나."

   "엄마가 아버지 병 간호한다고 힘들어 하시는데 집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엄마가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면서 고생하실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네요. 제가 군 생활 마치고 와서 우리집 빚 다 갚을테니까 힘내세요."

   그날 진남이가 한달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고생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 상황들이 너무 속이 상해 선자는 아들을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남편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눈물로 계속 나왔다. 

 

   남편 희운이 명퇴를 할 때 진남이는 대학교 신입생이었고 딸 선남이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지만, 남편의 퇴직금도 있고 벌어논 돈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애들 공부를 시키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으로 알았다.    

   희운은 명퇴를 한 이후 만나자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한동안 밖으로만 돌았다. 일자리를 잃고 기가 죽어 지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선자는 희운이가 하루종일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거의 물어보지도 않았다. 선자가 못 마땅하게 여긴 것은 수 억원에 달하는 명퇴금을 구경도 못했다는 것이다. 희운은 은행에 다닐 때에도 돈 관리를 본인이 하였고, 선자에게는 매달 일정금액의 생활비만 주었다. 선자가 아무리 이에 대한 불만을 말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은행 퇴직후 몇 개월은 직장에 다닐 때와 비슷한 금액을 매월 남편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희운이 적당한 곳에 곧 취직을 할 것처럼 말을 하여 곧 안정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희운은 적당한 일자리를 알아본다며 선자에게는 말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또 주식거래를 하며 증권사 객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은행에서 후선으로 발령받은 이후 주식과는 거리를 멀리 하였었는데, 퇴직후 자연스럽게 발길이 머무는 곳은 증권사이었다. 처음에는 여러 종목을 작은 금액으로 분산하여 투자하였다. 솔직히 재미삼아 5백만원 이내에서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음 5백만원을 투자한지 한달도 안돼 5백만원 이상을 버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만원을 한도로 투자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천만원 이상을 벌었다. 자신이 붙었다.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여러 자료를 분석하여 투자한도를 5천만원으로 늘렸다. 계속해서 벌고 또 벌었다. 희운의 주변 사람들은 희운을 "애널리스트 권"이라거나 "펀드 권"으로 불렀다. 눈앞에 큰 돈이 보였다. 자신의 이름처럼 '기쁜 운'이 언제나 찾아온다고 믿었다. 몇 달 동안 많은 돈을 벌면서 주식투자에 대한 자신과 더불어 욕심이 생겼다. 욕심은 자꾸 커져만 갔고, 희운에게 돈이란 것은 돈이 돈을 버는 것으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점점 속도를 내기만 할 뿐 '적당히'라는 것은 없었다.

   희운은 큰 금액을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것도 아니었다. 본인이 분석하여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1~2종목에 집중투자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식시장은 희운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러가지로 분석한 결과 분명히 올라야 할 종목들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주가는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귓가를 맴도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돈을 벌었을 때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욕망을 섞어서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과감하게 밀어 넣었다. 주식신용거래 금액도 커져만 갔다. 은행 퇴직후 10개월이 지났을 무렵엔 결국 가지고 있던 퇴직금을 포함하여 통장에 있던 모든 돈이 사라졌다. 

  

   선자는 남편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는 데 대하여 크게 실망하였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수발을 들어가며 생활을 해온 것 까지는 견딜 수 있었지만 가정경제가 엉망이 되고 난 후부터는 희운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선자도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고 살기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사십을 넘어서다 보니 주로 하는 일은 허드렛일로 빌딩 청소나 식당의 서빙 등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는 자식들 뒷바라지는커녕 생활자체가 힘들었다. 가난은 밤에도 일하는 곳을 찾게 만들었다. 식당에서 알고 지내게 된 안경화와 함께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동안을 내세워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게 되었다.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멍난 행로 4  (0) 2017.11.29
구멍난 행로 3  (0) 2017.11.21
구멍난 행로 1  (0) 2017.10.29
200년 후 어느 날(5)  (0) 2017.03.10
200년 후 어느 날(4)  (0) 201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