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1

헤스톤 2017. 10. 29. 16:08


소설가로 등단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안다.

시(詩)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 한편 쓰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나마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것은 좀 나은 것 같다. 수필이라는 이름을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잡문만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난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글이 충분히 익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지만,

서두르지 않으련다. 죽을 때까지 좋은 작품 하나 못 내도 상관없다.

가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갈 뿐이다.

 

아래의 글은 연습삼아 써 보는 글로 단편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 써 본다.

현재 예상으로는 5회에 걸쳐 게재하려고 한다.

 

 

구멍난 행로

 

1. 퇴원을 앞두고

 

   거울을 보는 순간 선자는 깜짝 놀랐다. 최소 오십은 넘겼을 것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그속에 있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아닌 것 같아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떠 본다. 최근 거울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남들보다 얼굴도 작고 동안이라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며 살았는데, 이젠 오히려 또래들보다 몇 살은 더 먹은 것처럼 보인다. 머리도 어느덧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선자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이후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지 못했다. 벚꽃들도 지고 파란 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재잘거리고 있는 봄인데 아직도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다. 선자는 병실안의 거울에서 낯설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거울옆에 있는 책상카렌다로 눈길을 돌린다. 4월 21일에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내일이다. 6년 전만해도 매월 21일은 좋은 날이었다. 남편의 월급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월 21일이 다가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났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까마득하다. 지난 6년은 더 이상 내려가고 싶어도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의 시간들이었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편 권희운은 은행원이었다. 부산에서 제일 좋다는 상고를 1973년에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 행원, 대리, 차장으로 근무하였다. 은행에서 실력도 인정받아 차장까지는 동기들보다 승진도 빨리 했다. 그런데 차장 고참이 되면서부터 거만해지고 부하직원들을 못살게 굴었던 것 같다. 차장이 되고나서도 처음에는 성실하게 근무하며 직원들로부터 신망을 받았었는데, 차장 고참이 되면서부터 지점장을 빨리 하고 싶었는지 실적달성을 위해 직원들을 달달 볶았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당시 권 차장의 학교 선배인 지점장은 정년이 얼마 안 남은 탓인지 가벼운 경고만 몇 번 했을 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구나 권 차장은 모 기관의 자금을 담당하는 동창을 통하여 지점의 수신 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에 더 힘을 주고 다녔다. 아무리 지점 실적에 기여도가 높다고 해도 부하 직원들을 함부로 막 대하는 것에 대하여 직원들의 평가가 좋을리 없다. 그러다가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주식에 정신이 팔려 업무를 소홀히 하고 증권사 객장을 들락거리는 것을 직원들이 알게 되면서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권희운이 주식매매에 정신이 팔린 것은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갔다가 동창 누구가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무용담을 들은 이후인 것 같다. 그때부터 주식과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돈 냄새를 잘 맡는 감각을 가졌다고 자신을 믿으면서 은행의 업무보다 주가동향에 관심을 쏟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은행 업무는 뒷전이고 자신의 부를 늘리는 것에만 몰두하여 증권사 객장에서 산다는 소문이 실제보다 더 눈덩이처럼 부풀려서 본사 인사라인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권희운은 인사조치되어 후선업무만 담당하다가 명퇴를 하게 되었다. 당시 IMF사태를 맞아 은행에서는 대대적으로 인력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마침 명퇴자들에게는 좋은 조건이 제시되어 군 생활 포함하여 25년 이상 근무한 은행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은행을 퇴직한지 벌써 6년이 되었다. 

  

   6년전까지는 병원이라는 곳도 정기검진을 받을 때 외에는 와 본 적이 없었는데, 장기입원한 것이 벌써 2번째이다. 약 2년 여 전에는 공사장에서 큰 사고로 입원하였고, 이번엔 교통사고이다. 

   이번의 교통사고는 희운 자신의 잘못이 없었기에 처음엔 억울하기만 하였다. 다리가 불편하여 좀 천천히 걷기는 해도 파란 신호등에 맞춰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소형 승용차가 돌진해 온 것이다. 운전자는 여성으로 20년 무사고 운전자이었고, 마누라인 김선자와는 몇 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외짝 교우이었다. 그녀의 말로는 당시 무엇인가에 씌었었던 것 같다고 하는데, 희운과 선자는 무슨 운명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희운은 경마를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사고로 가지 못했고, 그 뒤 이 사고는 신의 뜻이라 여기고 도박과 비슷한 것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다만 오래전 다친 다리를 또 다치게 되어 이젠 앞으로 평생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그래도 2개월의 치료를 마치고 이틀 후 퇴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자는 병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주택관리사 문제집을 보고 있는 희운에게 말을 건넨다.         

   "여보~ 진남이의 제대가 내일로 다가왔네요."

   "어제부터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건가.. 아~ 나도 빨리 보고싶다. 우리 아들..어디 아픈 곳은 없다고 하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날은 진남이의 전역일자이다. 선자는 아들에게 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다시한번 거울을 들여다 본다. 갑자기 확 늙어버린 엄마를 보고 아들이 놀랄까봐 얼굴을 매만지다가 병실 밖으로 나왔다. 

   봄 햇살이 너무 아름답다.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보았다. 입대하기 전날 진남이가 보여준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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