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00년 후 어느 날(2)

헤스톤 2017. 2. 1. 16:30

 

 

200년 후 어느 날 (2)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것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후임자가 잘 해주어야 내가 추진하던 각종 사업을 잘 마무리하거나 계속 진행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골치가 아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대통령

역할을 너무 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된다.

물론 내부나 외부의 좋은 환경이 나의 실적을 높이 만들어 준 측면도 있다. 3년동안 연평균 경제성장율만

해도 10%가 넘었다.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나라가 된 것은 아니지만 행복지수는 제일 높은 나라가

되었다. 출생자 수도 3년만에 10%이상 증가하였다.

 

후임 대통령 선출문제는 분명 골치가 아픈 일이지만 여하튼 난 모르다. 3개월만 지나면 임기가 끝날 것이고

나는 일반 시민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해진 법률에 따라 나는 대통령 3년 임기를 마친 후에는 이 나라에서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권한만 있다. 이젠 평생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제 겨우 칠십 초반밖에 안된 젊은 사람이 집 구석에만 쳐 박혀서 놀고 먹으며 보낼 생각은 없다.

나이로 보면 최소 10년은 더 일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산이나 계룡산, 아니면 한강이나 금강의 시간직 

청소원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작년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초년병사자를 제외하면 103.7살이니 적어도 30년 이상은 더 살 가능성이 높다.

출근 안하는 날에는 외국 친구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과 대화의 시간도 많이 가지고 주중에 운동도

실컷 하면서 보낼 것이다. 강의나 저술활동도 틈틈이 할 것이다.

나이 생각을 하니 내가 대통령을 너무 어린 나이에 했다. 사실 당시 할 만한 사람들이 서너명 있었지만 서로

안 하겠다고 하도 지랄을 떨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참 이기적이다. 왜 봉사직은 서로 고사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산출직 공무원들에게는 약간의 경비만 주어질 뿐 아무 혜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즉, 철저하게 봉사만 하다보니 투철한 애민정신이 없는 사람은 나설 수도 없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1억 1천만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은 되어야 하는데

서로 안하겠다고 난리를 쳐서 200개의 지역구 숫자를 늘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것도 아예 후보를 못내는

지역구가 많고, 후보를 내는 지역구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1명밖에 출마를 하지 않아서 무투표

당선이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현재 국회의원이 없는 지역구가 많아 의원수는 141명에 불과하다.

약 200년 전에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회의원도 서로 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옛날 자료를 보면 국민의 의무를 제일 이행하지 않는 자, 전과자, 각종

투기나 부정부패를 일삼는 자들이 주로 정치를 했다고 하는데 당시 사회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 국가나 국민을 위한 봉사직에 돼먹지 못한 권한에다 엄청난 특혜를 주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당시에 SOK(South Of Korea) 인구가 5천만명밖에 안되는데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나 되었다고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비례대표라는 희한한 것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어떤 제도인지 아는

역사학자도 드물다. 

 

여하튼 이제는 국회의원 뽑기가 참 어렵다. 희망자가 거의 없다. 아무래도 이와 관련된 제도도 좀 바꾸자고

신년사에서 언급도 하고 국회에 요청도 해야할 것같다.

오전 8시 비서관들과 올해 마무리 사업 점검 회의 후 10시부터 1시간 이상 4선 이상의 국회의원 15명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다음 선거에서는 모두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실 그들에게 계속해서 국가를 위해

봉사를 요청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앞으로는 재선까지만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보자고 할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는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옳다. 그들에게 계속 희생을 요구할 수가 없다.

오늘 회의에 참석한 의원 중에는 6선이나 8선도 있었는데, 이들은 이제 가지고 있는 재산도 거의 탕진하여

살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국가를 위해 오랜기간 봉사한 이들에게는 제도적으로 약간의 평생

생활비가 보장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신년사에 언급할 내용의 뼈대만 대충 그리고 있는데 제일 왼쪽의 영상통화가 뜬다. 집사람이다.

"기쁜 소식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글쎄 우리 아들이 합격했대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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