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5

헤스톤 2017. 12. 17. 15:47

 

당초 예상대로라면 4회 정도에서 과거 회상을 끝내고 첫회의 시작시점으로 돌아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5회 정도에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과거 회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당초 예상보다 3회 정도는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저나 5회분을 다 써서 지난 금요일(12. 15.) 글을 올렸는데..

줄 간격이 맞지않아 수정하다가 그만 잘 못해서 삭제하는 바람에 늦어졌다.

복구도 안되고 하여 막막한 마음이었다. 큰 경험 하나를 하였다.

자기가 쓴 글도 그렇지만, 과거의 일이나 옛 친구를 함부로 삭제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5. 인연이라는 것

 


   희운이가 구속된 이후 선자의 생활은 더 힘들어졌다. 우선 빚쟁이들로부터의 독촉강도가 높아지면서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희운이가 구속되기전에는 희운이에게만 독촉하던 빚쟁이들의 협박이 선자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이 어디이고 끝이 어디인지 분간 못 할 정도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너무 괴로워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는 이대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 날도 있었다. 진남이와 선남이만 없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지금은 당장 백만원이 급하다. 빚쟁이들의 행태로 보아 내일 자식들에게 어떤 협박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갔다. 

   "저~ 죄송한데요. 저한테 백만원만 빌려줄 수 없을까요? 돈은 꼭 갚도록 할께요."

   앞뒤 가리지 않고 처음보는 손님에게 불쑥 말을 내뱉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애들 생각뿐이었다. 그 외에 어쩌면 매너 좋고 잘 생긴 이 남자에게 기대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슬프고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눈물을 흘렸고, 지금까지 보았던 손님들과 다르게 어디를 자꾸만 만지려고 하지도 않으며 상대를 편하게 해주려는 마음에 빠져들고 있었다.

   "허~ 처음보는 사람에게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급하긴 급한 모양입니다만, 아주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곤란합니다. 우선 왜 그런 돈이 필요한지나 말해 줄 수 있나요?" 

   "이유는 묻지 마시고 빌려주시기만 한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돈 백만원이란 것이 글쎄요. 돈 좀 있는 사람에게는 작은 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곤란합니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빌리지 못하면 내일 빚쟁이들이 애들에게 어떤 협박을 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급박함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게 하였다.

   "원하신다면 오늘 밤 사장님이 하자는대로 다 할께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남자의 이름은 박세근으로 희운보다는 4살 어리고, 선자보다는 1살 많았다.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여 큰 돈을 벌었고, 사십이 될 무렵에 사업을 정리하였다고 한다. 그 업계에서는 30대 중반만 넘어서도 감각이 떨어져 늙은이로 취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대로 재테크 기술도 있었던 탓인지 사업을 정리한 자금으로 시내에 8층짜리 건물도 소유하고 있고, 커다란 제과점을 4개나 운영하고 있는 재력가이었다. 그 날 왜 혼자 노래방에 와서 도우미를 불러놓고 슬픈 노래를 불렀는지에 대하여는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사업적인 것보다는 가정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날은 자세하게 말을 했어도 선자 자신의 급박한 심정으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세근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괴로움을 달래려고 호텔 바에서 술 한잔 하다가 불빛이 번쩍거리는 노래방에 들어왔고, 혼자 오셨느냐면서 '도우미를 불러드릴까요'라는 주인의 말에 그러라고 해서 20분쯤이 지나 선자가 들어와 처음보는 자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이 상황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여자가 얼마나 급박하면 '자신을 내던지는 말까지 할까'에 대하여 생각하니 매정하게만 대할 수는 없었다. 계좌번호를 적어 주면 내일 오전 일찍 입금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은 이것이 전부라며 만원짜리 30장을 선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선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하였다. 선자는 만원짜리에서 희운의 얼굴이 자꾸만 보였다. 다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희운은 선자를 "만원짜리 마누라"라고 부르곤 했다. 우리는 "만원짜리 부부"라고 하기도 하였다.

   희운이가 은행에서 시세업무를 담당할 때로 1970년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희운의 나이도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뭇잎도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이 쓸쓸하게 보이던 어느 날이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거기 시세창구이지요? 오늘 11시쯤 그곳에 각종 세금하고 공과금을 낸 S철관의 경리직원인데요. 거스름돈 만원이 모자라서 전화했어요."

   전화의 목소리만으로도 희운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재작년에 여상을 졸업하고 S철관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직원으로 거래업체의 여직원들 중 손가락에 꼽히는 미인이고, 업무처리도 잘한다고 소문난 직원이다. 하지만 만원을 덜 주었다는 말을 들은 희운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희운은 지금까지 은행업무를 하면서 한번도 틀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산 5단으로 셈도 빠르지만, 무엇보다 숫자에 관해서는 정확하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저는 돈을 더 내주거나 덜 내주는 일이 없습니다. 혹시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았는지 잘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예요. 곧장 회사로 왔기 때문에 거스름돈을 만진 적은 없구요. 오늘 일백만원을 찾아서 총 공과금 699,700원을 내고, 거스름돈으로 300,300원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 와서 확인해 보니 290,300원밖에 없거든요." 

   "그럼 은행에서 거스름돈을 받았을 때 확인해 보시지 않았나요. 약 2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절대로 제가 잘 못 계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확인 못 한 제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재를 확인해 보면 안될까요?"

   당시는 전산화가 되어있지 않아 모든 것을 수기로 처리하던 시절이기에 정확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는 향후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가마감이라도 하여야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월말인 탓으로 계속 밀려드는 손님들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오늘 저녁에 마감하여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께요."

   "기다릴테니 회사로 꼭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업무시간이 종료된 후에도 많은 손님들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마감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 만원이 남는 것이었다. 희운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정확성보다 앞설 수는 없다. S철관으로 전화를 하였다. 밥도 굶으며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그 여직원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쩌면 일부 사심이 작용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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