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7

헤스톤 2018. 1. 11. 18:46

이번엔 이미 줄거리가 기록되어 있어서 비교적 쉽게 쓴 것 같다.

생각대로 글이 쭉 뻗어나가지는 못했지만, 

속도를 내어 첫회에 나오는 선자의 회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소설이라곤 하지만 완전 허구는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곧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7. 선악의 갈등


   공단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선자의 외삼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 세월 서로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자식도 없는 외삼촌이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희운과 함께 일을 하고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일을 함께 한다기 보다는 나이가 팔순을 바라보고 있고 이러저러한 잔 병도 많아서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모두 희운에게 맡길테니 매달 일정 금액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지만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고마운 조건이었다.

   희운은 열심히 일했다. 과거 은행에서 근무할 당시 공단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많은 중개건을 성사시켜 나갔다. 무엇보다 타고난 근면과 성실함이 큰 바탕이 되었다. 그러다가 희운은 사업장 경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부동산 붐을 타고 이것이 매우 짭짤하였다. 손님들의 계약건을 많이 성사시키며 수수료를 많이 챙겼다. 본인이 직접 뛰어들기도 하였다. 당시 법의 허술한 점을 이용하여 적은 금액으로 큰 돈을 벌었다. 총금액의 10%인 계약금만 갖고 낙찰을 받은 다음 전매하는 방식 등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사업장 관련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운이 크게 작용하였다. 어쩜 돈을 번다고 하는 것은 노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운은 그동안 고생한 선자에게 매일 애정표현을 하면서 돈을 버는대로 선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선자의 얼굴에 자주 미소가 보였다. 희운을 바라보는 눈이 신혼시절만큼은 아니지만, 희운의 건강을 위한 식재료를 산다고 자주 시장에 다녀오곤 했다. 희운이가 부동산 중개업을 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빚도 많이 정리하고 조그만 집도 하나 살 수 있었다. 딸 선남이는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지만 전문대에 다닐 수 있었다. 얼마만에 맛보는 따뜻함인지 모른다. 선자는 그동안 겨울이 너무 길었고 혹독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겨울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또 희운의 고질병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돈을 조금 만지다보니 희운의 도박근성이 살아난 것이다. 희운의 입장에서는 좀 더 빨리 일어서고 싶은 욕망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의 주식투자처럼 가지고 있는 재산과 그 이상의 대출을 받아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경마장에 드나들면서 스릴을 느끼곤 하였다. 경마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친구를 망하게 하고 싶으면 경마장에 데리고 가라' 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었다.

   선자는 다시 가슴앓이를 하기 시작했다. 희운에게 제발 그런 곳에 다니지 말라고 화를 내고 사정을 해보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만 소액으로만 베팅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자는 예전 노래방 도우미 시절부터 친구처럼 지내는 안경화를 만나 이런 고민을 토로하곤 했다. 경화를 따라 교회에도 다녔다. 남편이 정신을 차리게 해 달라고 교회에 나가 수없이 청원을 드렸지만 하느님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경화의 반응이었다. 경화는 남편과 자식들이 있는 선자를 오히려 부러워하였다. 비록 경제적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한 희운이지만, 서로를 아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경화는 이러저러한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자신의 신세가 가여워 자주 비틀거리곤 하였다. 그런 남자들과의 만남은 돈과 연결된 것을 제외하면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자를 부러워하며 희운에게 은근히 관심을 가졌었던 것 같다. 선자보다 젊은 것은 물론이고 좋은 몸매와 특유의 애교를 내세워 희운에게 접근을 하곤 했다.

 

   희운은 매우 가정적인 사람으로 경화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유혹을 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경화라는 여자가 자기 근처에 오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경화로써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유혹해서 넘어오지 않은 남자가 없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일을 본 다음에는 상당한 지폐를 받곤 했는데, 희운은 자기를 징그러운 뱀 보듯이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한다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경화 본인은 '사랑의 열병'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정도가 아닌 집착'을 중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 작용하여 결국 그런 사고가 발생하였는지도 모른다. 경화는 자신도 당시 왜 그랬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운전미숙이라고 하였지만, 결국 좋지 않은 사고가 나고 말았다. 횡단보도에서 희운을 덮친 것이었다. 희운은 파란 신호등에 맞춰 횡단보도로 들어섰고, 그때 차를 운전하고 있던 경화는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면서 차를 곧바로 정지시키지 못하고 사고를 내고 말았다. 어쩌면 횡단보도로 들어서는 사람이 희운이라는 것을 알아 보고는 일부러 뒤늦게 브레이크를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약 2년 전 고속도로 공사에서 다쳤던 다리를 크게 다쳐 이제는 아무리 재활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평생 목발이나 휠체어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경화는 자기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선자 몰래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고 고백했지만, 선자는 용서할 수 없었다. 희운과는 원만하게 합의를 하였지만, 선자와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사실 이날 희운은 경마를 하러가는 길이었는데, 어쩌면 이것은 앞으로 그런 곳에 가지 말라는 신의 명령이라고 여기고 다시는 절대로 경마장에 가지 않겠다고 희운은 맹세를 하였다. 이번에는 선자의 믿음으로 하느님이 보호를 해 주었지만, 한번 더 그런 곳에 가게 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희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희운은 선자에게 각서도 제출하였다. 희운이 일반병실로 옮긴 이후엔 '주택관리사' 공부를 시작하였다. 약 2년 전에도 그러더니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면 희운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선자가 희운의 병 간호를 한지도 어느덧 2개월이 넘었다.

 

   선자는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진남이를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힘들었던 지난 일들이 단편적으로 지나간다. 4월 하순의 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다. 마치 지난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저 멀리서 눈에 익은 모습이 들어온다. 딸 선남이다. 자신의 딸인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선남이가 어떤 중년 남자의 팔짱을 끼고 오는 것이었다. 왠지 불안의 바람이 머리를 감싸고 돈다. 가까이 다가온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선자는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멍난 행로 9  (0) 2018.02.05
구멍난 행로 8  (0) 2018.01.29
구멍난 행로 6  (0) 2018.01.04
구멍난 행로 5  (0) 2017.12.17
구멍난 행로 4  (0) 201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