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9

헤스톤 2018. 2. 5. 19:54



당초 예상보다 소설이 길어져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지만, 이젠 아예 10회까지 채우고 싶어졌다.

길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원고지 약  150매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개 단편소설의 분량이 120매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좀 긴 소설이 될 것 같다.



(영화배우 김지미의 젊을 때 사진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최고의 배우이었다.

동네 꼬마들이 영화 포스터의 김지미 사진에 뽀뽀를 하도 해대는 바람에 입술부분이 너덜거렸다.

내가 대전에서 초등학교 6학년 다닐 때 담임선생댁에서 하숙을 했는데, 사모님<이름이 '김지분'으로 몇 년전

돌아가셨음>이 김지미 사촌언니라고 해서 당시 최무룡과 김지미가 대전에 왔을 때, 그 집에 들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유명한 영화배우 얼굴 한번 보는 것만도 영광이었다. 

대학교때 지도교수님<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님>이 집을 샀는데 김지미한테 샀다고 한다. 나훈아와 김지미가

살던 집이라고 했고, 집들이 할 때 그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수 많은 예쁜 여배우들의 사진이 있는데, 내 눈엔 김지미가 제일인 것 같다.)  






9. 쌓이는 상처



   선자의 고통은 남편으로 인한 괴로움이 끝나기도 전에 딸의 문제로 이어졌다. 희운이 때문에 겪게된 경제적 압박으로 가정이 엉망이 되었다면 선남이로 인한 고통은 심적인 고통이었다. 어느 것이 더 강도가 심한 것인지 비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과거보다는 현재의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무리 사랑엔 국경도 없다지만, 세근이와 선남이의 나이차가 어울리지 않는다. 세근은 선자보다도 오히려 한살이 많다. 그것보다 세근은 한때나마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갔던 남자이다. 말이 좋아 친구이지 사실은 애인 사이라고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선자는 더 괴로웠다. 이렇다 보니 나이차 보다도 박세근이란 사람을 도저히 딸의 짝으로써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선자는 틈만 나면 선남이를 설득하였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륜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론 이미 여러번 선을 넘었다는 선자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도 선남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선남이는 오히려 하늘이 정해 준 운명을 엄마가 방해하고 있다며 선자를 원망하였다.

 

   프로젝트 작업 등으로 선남이는 세근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세근은 선자와의 관계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선남이를 자꾸만 밀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선남이를 좋아하는 표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고, 선남이도 세근의 마음 속 깊이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선자는 눈치를 채고 절대로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되어 세근에게 만나자고 하였다.

   "세근씨! 제발 우리 딸 마음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도 괴롭습니다. 억지로 선남이를 멀리하면서 저도 지금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예전엔 저를 좋아하지 않으셨나요? 지금은 세근씨나 저나 그런 감정이 많이 내려갔듯이 좋아하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선자씨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롭니다. 다만 선자씨를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 나도 모르게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아무리 달려 들어도 가정을 지켜야 한다며 저를 이성적으로 대하고 저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던 것처럼 제 딸에게도 그렇게 대해주셨으면 해요."

   세근은 선자에게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답답하였지만, 선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선남이를 멀리하면서 자신은 매우 힘들고 괴로웠다. 선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선자의 얼굴도 언제나 먹구름이었다. 그러다가 희운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건이 악화되었다.

  

   희운은 세근과 선자의 관계라거나 선남이와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면을 확대 상상하였다. 희운이는 선자의 자세한 설명에도 실제와 다른 상상의 날개를 달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선자에게는 너무 많은 고생을 시키며 지은 죄가 너무 많은 탓인지 화도 제대로 내지 못했지만, 박세근이란 자는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보다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모두 세근에게 쏟아 버렸던 것 같다. 부동산을 하면서 알게 된 업자들과 합세하여 세근의 회사에 가서 쑥대밭을 만들었다. 세근이가 무슨 설명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짚고 간 목발로 갑자기 폭행을 하는 바람에 세근의 잘 생긴 코뼈가 골절되어 전치 4주의 피해도 입혔다. 솔직히 세근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희운이가 교도소에 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선자가 가정에 충실하도록 도움을 준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살다보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좋은 일을 하고도 날벼락을 맞는 경우가 있다. 주변에서는 폭행죄로 고소하라고 하였지만, 세근이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이로인해 제일 괴로운 사람은 희운의 딸인 선남이었다. 선남이는 그렇지 않아도 세근이가 날이 갈수록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아 너무 괴로운데, 아빠나 엄마때문에 세근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부모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자신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는 현실에 크게 낙담했다. 선남이는 유서를 쓰고 바닷가로 갔다. 세근에게는 사랑해서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 많았었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한편 희운의 부동산 중개 일은 날이갈수록 시들해졌다. 희운의 다리가 불편해짐에 따라 맘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수입은 교통사고 전과 비교할 때 4분의 1 정도로 떨어졌다. 선자가 자주 나가서 일을 도와주었지만 사무실을 빌려 준 외삼촌에게 줄 돈도 모자랐다. 무엇보다 희운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 같아 결국 선자의 요청에 따라 부동산 중개업은 교통사고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만두었다. 희운이는 또 백수가 되었고 살림은 여전히 쪼들렸다. 직장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희운이가 들어가기에 마땅한 곳을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희운이는 머리가 좋은 탓으로 1년도 공부하지 않고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수 개월을 노력해도 잡기 힘든 직장이었지만,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는 운 좋게 조그만 건물 관리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건물에 취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보수가 워낙 적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런 직장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선자는 감사기도를 올렸다. 그 건물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월급이 워낙 적어서 자격증 있는 사람들이 기피했기 때문에 희운이가 들어갈 수 있었다. 선자도 식당 주방일 등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 진남이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진남이는 군 제대후 학교에 복학을 하였고 도서관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입대전 휴학을 몇 차례 한 탓으로 4년 후배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좋은 보직을 받아 연대장의 배려하에 고시 공부를 하였지만 사법고시는 만만한 시험이 아니었다. 복학후에 치른 시험에서도 1차시험에만 합격을 하고 떨어졌다. 희운이와 선자는 진남이를 위로하며 용기를 주었지만 진남이는 낙담하여 방황을 하였다. 진남이가 방황하는 몇 개월동안 선자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선자는 남편이 생사를 오가며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자식이 아프면 남편이 아픈 것보다 2배는 더 아픈 것 같았다. 다행히 진남이는 해가 바뀌기 전에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에 열중하였고, 대학교를 졸업한 해에 치른 시험에서 합격을 하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전 일시적인 방황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던 효자 아들인 진남이었지만, 진남이가 사귀는 여자 문제로 선자의 괴로움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사실 진남이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좋은 조건의 중매가 계속 들어왔다. 진남이가 일류대 법학과 출신인 탓도 있고, 연수원의 성적도 좋은 탓인지 많은 중매쟁이들이 달려들었다. 직업으로는 의사, 약사. 교수도 있었고 , 재벌집의 외손녀도 있었다. 솔직히 선자는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의 앞날을 위해서 좋은 짝을 맺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진남이가 사귀는 여자는 군에 있을 때 펜팔로 편지를 주고받던 사이로 현재는 유치원 교사라고 하였다. 그런데 직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날 진남이가 선자에게 옷 한벌 사준다고 백화점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진남이의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는 자기의 이모라고 하는 사람과 함께 나왔다. 선자는 이모라고 하는 사람을 보고 기분이 팍 가라 앉을 수밖에 없었다. 신의 장난이 아니고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순이 아버지 1  (0) 2019.01.10
구멍난 행로 10  (0) 2018.02.15
구멍난 행로 8  (0) 2018.01.29
구멍난 행로 7  (0) 2018.01.11
구멍난 행로 6  (0) 2018.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