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난 행로 10

헤스톤 2018. 2. 15. 09:55

처음 이글을 시작할 때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 동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 있어 다행이다.

다음엔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다짐해 본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살아 온 과거가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토닥거려 주자는 것이다.

아무 상처없이 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들었던 지난 과거가 없었더라면 현재도 없다.

지나간 것들을 포용하면서 오늘 이순간에 감사하며 살자는데 초점을 맞추어 보았는데,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10. 지난 날에 감사하며

 

   진남이와 사귀는 여자는 '방현희'라고 하는데, 그녀의 이모는 한때 희운이를 유혹하려고 했던 '안경화'다. 선자로써는 정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 하필 안경화인가에 대하여 거부감이 들었다. 현희라고 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 죽고, 엄마와 둘이서 어렵게 살았다고 하는데 어려서부터 이모인 경화가 경제적으로 많이 돌봐주었던 모양이다. 백화점에서 경화를 보고 선자도 놀랐지만 놀라기는 경화도 마찬가지이었다. 선자는 경화가 그동안 어떤 행실을 보이며 살아왔는가를 잘 알기에 둘의 교제를 인정할 수 없었다. 현희의 엄마도 경화와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 그들 한테서 무엇을 보고 배웠겠는가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였다. 무엇보다 앞으로 살면서 경화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경화와 사돈이라도 맺게 된다면 희운에게 애교를 부리며 접근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선자에게 진남이가 어떤 아들인가.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선자로써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들이기에 아들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남이가 현희의 외모만 보고 반한 것 같아 속상하였다. 

   그러나 진남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진남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류대 법대에도 갔고, 사법고시에도 합격하였지만 자기가 사귀는 여자까지 부모의 간섭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선자는 계속 말리고 싶었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어쩔 수 없이 둘의 교제를 두고 보기로 하였다. 경화와의 인연은 지난 희운이의 교통사고 이후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인연이란 것은 끊어졌다고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경화와의 인연도 그렇지만 박세근과의 인연은 더 질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남이가 자실을 하겠다고 나간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딸의 앞길을 막다가 정말 딸을 완전히 잃을 뻔 했던 그날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슨 급박한 일이 있을 때 소위 '촉'이라는 것이 발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자는 정말 그날 무엇인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도 출근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꼼짝 안하고 있는 선남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르바이트 하던 식당 일을 중단하고 집에 일찍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면도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식탁위에 선남이의 유서가 있는 것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경찰에도 연락하고 세근에게도 연락했다. 

 

   세근도 선남이의 메시지를 받고는 바빠졌다. 세근의 머리속에 갑자기 서해안의 H호텔이 떠올랐다. 선남이와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낸 곳으로 석양이 아름답게 보이던 곳이다. 그곳에서 선남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석양처럼 자기도 갈 때 아름답게 가고 싶다는 말이 떠올라 그곳으로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H호텔에 가서 숙박자 명단을 확인하고 둘이 함께 보냈던 룸으로 호텔 직원과 함께 급히 올라갔다. 선남이는 쓰러져 있었다. 세근이가 사준 목걸이를 하고, 세근이가 예쁘다고 말해 주었던 옷을 입고, 세근이와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는 지갑을 꼭 쥐고 있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의사 말로는 5분만 늦었어도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희운이와 선자는 선남이를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선자의 가슴엔 자신도 모르게 못이 깊게 박혀 있었다. 선남이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었다. 선자 자신을 위로하는 말로 자식에 관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기로 하였다. 도도하게 흐르는 어떤 물결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통념상 용납하기 힘든 사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인정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선자의 머릿속에는 '전생의 업보'라거나 '신의 섭리'라는 단어들이 맴돌았다.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선남이의 자살 소동이 있은 지도 10년이 더 지난 것 같다. 과거를 생각하며 지금 선자는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남편 희운이의 명퇴로부터 시작된 경제적 고통과 자식들로 인한 심적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지나고보니 당시의 그 모든 것들은 현재의 평안함을 주기 위한 밑거름이었던 것 같다. 고통속에서 보낸 그 시간들은 절대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도 선자의 인생에서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시간들이었고,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현재 이렇게 안정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인생에서 이 시절보다 더 자신을 힘들게 한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지난 약 10년동안에도 크고 작은 무수한 일들이 있었다. 조금 큰 것으로는 선자 자신이 암 투병을 하기도 했다. 유방암이 발견되어 한쪽을 도려내며 슬프기도 했지만, 자신의 신체적 고통은 남편이나 자식들로 겪은 그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희운이의 기력이 많이 약화된 것 같다. 무엇보다 옛날 젊을 때 큰 소리치던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고, 마누라 눈치만 살피는 것 같아 속상하다. 희운이가 간혹 사위인 세근을 만나 가가대소할 때도 속상하다. 자신앞에서는 그렇게 크게 웃은 기억이 가물거려 희운의 기를 살려주려고 애를 쓰며 산다. 

 

   진남이는 사법연수원 수료후 적성에 맞는 판사가 되었고, 얼마전에는 S지방법원 단독판사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다. 판사가 된 후 몇 번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사귀던 현희와 결혼하여 이제는 아들과 딸을 각각 1명씩 두고 있다. 선자는 이 손자, 손녀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선남이도 딸을 하나 낳았다. 선남이는 간혹 선자에게 투정을 부린다. 아들만 자식이냐고 하면서 자기 딸은 왜 돌봐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선남이는 가정부도 있고 베이비시터도 있기에 자신의 손길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남편 희운이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세근이의 빌딩 관리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 선남이는 제과점을 하나 맡아서 일하고 있으며 선자를 만나러 자주 친정에 온다. 선자는 지금 행복하다. 시련을 주었던 과거에도 감사하고 지금 이렇게 사는 것에도 감사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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