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명순이 아버지 2

헤스톤 2019. 1. 17. 10:48

 

 

2. 별쭝이의 박

 

내 나이 9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시골 앞집에 초등학교 동창인 명순이가 살았는데, 무엇보다 기억나는

것은 명순이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별쭝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실제 그의 이름은 "김복중(金福中)"이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름 가운데 자(字)의 '복'을 '별'로 바꿔서 

약간은 무시하는 투로 그렇게 불렀다. 당시 나는 그의 이름이 "김별중"이고, 그냥 부르기 좋게 된소리를

넣어서 "별쭝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네 꼬마들끼리도 그를 칭할 때 "별쭝이 아저씨"

내지는 그냥 "별쭝이"로 불렀다. 그가 왜 그렇게 불렸는지는 이름 탓도 있지만, 하는 말과 행동들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얼마나 별쭝맞게 굴었으면 그런 명칭으로 불렸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별쭝이"라고 하면 면 소재지는 물론이고 읍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었다.

어린 내가 봐도 그는 개차반이었다. 

그의 친척들도 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기술이나 직업도 없으면서 농사짓는 일은

완전히 뒷전이었고, 거의 매일 술로 생활하였다. 그리고 무엇이 항상 그렇게 못 마땅하였는지 '불평불만'

이라는 글자를 그의 얼굴에 달고 다녔다. 

따라서 생계는 거의 명순이 어머니가 남의 집 품팔이를 해서 이어갔다. 그 와중에도 부부금슬은 좋았는지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자식은 6명이나 낳았고, 명순이는 4번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동네 저 동네 

집들을 돌아다니며 밭일을 주로 하였고, 우리집 일도 자주 하러 왔다. 명순이 엄마는 봄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거나 자기 집의 급한 일이 아니면 매일 품삯을 벌려고 놉 구하는 집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번 돈들도 거의 명순이 아버지의 외상 술값으로 들어가곤 하여 그 집은 언제나 궁핍하게 생활하였다. 

어린 내 눈으로 봐도 힘들게 사는 모습이 보였다.



 

 

정남향으로 집을 지은 우리집과는 다르게 동향으로 있는 명순이네 집의 특징은 다른 집보다 지붕이 조금

낮았는데, 그 위로 무엇을 키운다는 것이었다. 특히 잘 말려서 바가지로 쓸 수 있는 커다란 박이 지붕을

누르고 있었다. 당시 시골집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녀의 집 지붕은 초가지붕이었고, 지붕위로 박을

키우는 집들이 있었는데, 그 집의 박은 유난히 크게 자랐다. 명순이 엄마가 정성을 기울인 탓인지 별쭝이

아저씨가 거름을 잘 준 탓인지는 몰라도 박이 매일매일 크기가 다르게 자랐다. 나는 박들이 그렇게 크게

자라는 것이 신기했다. 동네사람들도 그 박들을 보며 한마디씩 했다.

"별쭝이가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박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키워."

"별쭝이가 박 키우는 것처럼 농사 일도 하면서 가정에 충실하면 좋을텐데.. 박이 크고 잘 생겼구먼!"


가을 햇살이 유난히 아름답던 어느 날 명순이 아버지는 박을 따서 톱으로 박을 탔다. 명순이네가 박을

탄다고 하니 동네사람들도 모여 들었다. 박을 타기 전에 명순이 아버지는 흥부네 박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지길 기대하면서 주문같은 것을 중얼거렸다.

"저에게 복을 주옵소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복이란 것을 안고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안에

금덩이가 가득 들어 있게 하소서. 해마다 우리집에 왔던 제비들도 모두 새끼들을 잘 키워서 돌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제발 보석들이 들어 있게 하소서."

하지만, 여러 개의 박 중 어느 것에서도 금은보화는 들어 있지 않았다. 명순이 아버지의 실망스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날 명순이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술을 먹었지만, 명순이 가족들은 박 속을 긁어서 끓여

먹기도 하고 무쳐 먹기도 했다는 말을 명순이한테서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명순이 아버지는 뒷 마당의 나무에 반으로 쪼갠 박을 걸어놓고 말렸다. 간혹 그 집의 뒷쪽을 지날 때

보면 잘 말라가고 있는 바가지가 보였다. 우리집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큰 바가지가 매달려서 자신의

존재들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가을이 자꾸만 깊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명순이 아버지는 가을걷이하는 어느 집 밭을 어슬렁

거리다가 오후 새참에 맞춰 술을 얻어 먹고 왔는지 얼큰하게 되어서 뒷 마당에 자리를 깔고 큰 바가지를

바라보며 생각의 날개를 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사는 자신이 한심했다. 남자로 태어나 매일 마누라에게 끼니 걱정이나 시키는 것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말투인 "별쭝이" 소리나 들으며 사는 것도 못 마땅했다.

술 기운 탓인지 바가지를 바라보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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