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명순이 아버지 3

헤스톤 2019. 1. 29. 13:18

 


 

3. 바가지 곡선


 

아무리 봐도 이 바가지들은 너무 잘 생겼다. 대개 큰 것들은 작은 것들에 비해 선이 곱지 못한데, 이것들은 

크기도 좋고 모양도 좋다. 그동안 비도 오지 않아 응달에서 말렸더니 윤(潤)이 보기좋게 흐른다.


별쭝이는 바가지의 곡선과 윤기(潤氣)에서 '고 부잣집'의 며느리가 보였다. 이제 겨우 스물의 나이로 지난

봄에 이 동네로 시집온 '고만득'씨의 며느리가 눈앞을 맴돌았다. 그녀는 인근의 사담마을이나 명곡, 용골,

삼수 마을 등을 통틀어 손가락 안에 드는 미인이지만, 그런 말보다는 화사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왠지 품위가 배어있고, 유연한 몸매속에 그윽한 정취를 풍긴다. 

별쭝이는 그녀를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무겁게 달아 오른다. 지난 주 우연히 길에서 그녀와 마주치고

지나갔을 때 그것이 주체를 못해 걷기 힘들 정도이었다. 그녀는 허씨(許氏)들만 사는 금강 이남의 '난들

마을'에서 시집온 여자인데,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탓인지 교양미도 갖추고 있었다. 별쭝이는 조신한 몸가짐

속에 드러난 그녀의 둔부를 바가지의 곡선에 맞춰 보며 침을 삼켰다. 


고 부잣집은 군내(郡內)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부자이다. 그 집은 대문부터 크고 으리으리하다. 대문

옆의 건물에는 그 집의 허드렛일이나 부엌일을 맡아서 하는 머슴들과 권솔들 몇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문에서 약 30m를 걸어 들어가면 중문이 나오는데, 그 중문 또한 높이 솟아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조그만

연못이 있고, 그 안에서는 잉어들이 노닌다. 그리고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는데, 부엌 2개와 방이 8개 있는

건물이다. 안쪽 가운데는 '고만득'씨 내외가 살고, 오른쪽 건물엔 아들 부부의 방이 있다. 왼쪽 건물엔 간혹

친척들이 자고 가는데, 비어있을 때가 많았다. 

고 부잣집이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의 고조부때부터인데, 그의 고조부는 조선 말에 정2품 판서 

벼슬을 하다가 이 동네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 부잣집'이 이 일대에 많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고조부가 은퇴후 후학들을 양성한 탓으로 타지에서 많은 이들이 자식들에게 글 공부라도 시키려고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고, 이로인해 동네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 탓으로 마을 사람들은

고 부잣집에 대하여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집이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고조부가 낙향한 이후인 19세기 말 조선 봉건사회의

붕괴라는 시대 상황도 순조롭지 못했지만, 후손들인 아들들의 삶이 길지 못했다. 큰 벼슬을 했다는 그의

고조부만 육십 중반을 넘겼을 뿐, 그 뒤 증조부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마흔도 넘기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특히 아버지는 삼십도 안된 나이로 죽는 바람에 한때 이 집은 증조모로부터 과부들만 모여있는

집 같았다. 

그 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권력도 사라지고 재산도 절반 이상이 줄었다. 1950년의 6.25 전쟁이나

3년 전에 있었던 5. 16 군사 정권 탄생도 이 집의 지위를 하락시켰다. 특히 바깥주인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집이었다. 고만득씨도 조상들의 성품을 이어받은 탓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잘했다. 따라서

이 집에 큰 일이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 집의 일을 하려고 나섰다. 


옛말에 '부자는 3대를 못간다'고 했지만, 고 부잣집은 달랐다. 어쩌면 재산을 탕진할만한 가족 자체가

별로 없었고,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버릴 것은 아낌없이 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재산이 대폭

줄기는 했지만, 이 집의 안주인들이 나름대로 재산관리를 잘 한 탓도 있어서 "부자"소리는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심을 잃지 않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 이 집의 큰 재산이었다. 

하지만, 어느 집이나 걱정거리가 없는 집이 없듯이 이 집도 큰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손이 귀하다는

것이었다. 고만득씨가 3대 독자인데, 그 아들도 독자이다. 더 큰 걱정은 지난 봄에 장가간 아들이 병약

하다는 것이다. 남자구실을 못한다는 소문도 있다. 

 

 

별쭝이는 바가지의 곡선을 보며 침을 삼켰다. 아랫도리에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난들에서 시집 온 허씨 새댁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루어질리가 없다.

지금의 나로서는 어림도 없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나의 죄는 우선 돈이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라는 것은 당장 처, 자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도 다

돈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밑바닥으로 살 수는 없다며 다시 중얼거렸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우선 술부터 끊으리라. 술이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망쳤다. 나는 부자가 되리라.

꼭 부자가 되리라. 고 부잣집보다 더 큰 부자가 되리라. 그리고 권력을 손에 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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