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명순이 아버지 5

헤스톤 2019. 3. 3. 09:24



5. 돈과 욕심



별쭝이는 돼지 냄새 때문에 일을 제대로 치루지 못한 날을 생각하면 다시는 돼지 근처에 가는 것은 물론

이고, 돼지고기도 먹고 싶지가 않다.

별쭝이가 동네에 많은 기부를 하면서 인정을 받고 있을 때이었다. 별쭝이는 동네에 고등어나 소금을 파는

사람이 오거나 화장품을 파는 사람이라도 오면 이것저것을 잔뜩 사서 동네 아낙들에게 나눠주곤 하였다.

자연히 동네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별쭝이는 그동안 참았던 허씨

새댁에 대한 욕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돈을 벌어 동네에 인심을 베푸는 모든 것들이 허씨

새댁을 품어보겠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별쭝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동네에서는 별쭝이의 속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부추기는 아줌마들도

많았다. 당연히 허씨 새댁도 별쭝이가 자기를 각별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씨 새댁은

언제부터인지 새댁대신 "난들댁"으로 불리고 있었다. 난들마을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이다. 동네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고 부잣집'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별쭝이가 잘 나가는 것과 반비례하여

고 부잣집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우선 고만득씨는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육십을 겨우 넘기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보다 병약한 그 외아들이 먼저 갔다. 이 집의 가세가 기운 것은 아들의 병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을 고치려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좋다는 약이나 용하다는 의원들을 쫓아다니면서

가세가 기울고 말았다. 그 많던 재산들이 밑빠진 독에 물 빠지듯이 줄어들었다. 고 부잣집의 집에서는

언제나 찬 바람이 불었고, 분위기는 썰렁하였다. 고 부잣집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줄어들더니 일하는 늙은

아줌마와 심부름하는 어린 여자 아이 하나만 남았다. 그 큰 집에 남자는 아예 없었다. 숙식을 하는 붙박이

일꾼들이 다 나갔기 때문에 농사일이 있을 때는 다른 집들처럼 놉들을 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의 일이다. 별쭝이는 고 부잣집에서 일하는 늙은 아줌마를 잘 매수한 덕분에 난들댁의

방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난들댁도 그동안 별쭝이가 자기에게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의 평판이 올라감에 따라 얼마큼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이끌리고, 여자는 남자의 평판에 이끌린다는 말처럼 허씨 새댁도 언제부턴가 별쭝이를 좋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별쭝이가 자기 방에 올 것이라는 것을 난들댁이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별쭝이의 생각과 다르게 난들댁은 역시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의 분위기나 둘 사이의 감정이 

충분히 익었음에도 난들댁은 허락하지 않았다. 난들댁은 가까이 오면 죽어버리겠다고 칼을 빼어드는

것이었다. 칼도 작은 은장도가 아니고 큰 칼이었다. 시퍼런 칼날에 별쭝이의 모습이 비친다.

그동안 온갖 정성을 쏟았기에 큰 어려움 없이 밤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한 별쭝이의 오산이 컸다. 사실

그동안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일이 있었고, 난들댁도 자신을 은근히 기다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부하는 난들댁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그동안 작업을 잘 해왔다고 해도 쉽게 무너

졌다면 오히려 흥미가 반감되었을지도 모른다. 별쭝이는 그동안 읽었던 시(詩) 중에서 김립(金笠)의 시가

생각났다. 김삿갓이 어느 과부의 집에서 유숙하다가 밤에 여자의 방에 들어갔던 바, 그녀가 거절함에

대답한 시로 별쭝이는 난들댁 앞에서 이 시를 읊었다. 




과부에게 주는 시


나그네 베개가 소조(蕭條)하여

꿈자리가 사납더니

이 밤 시퍼런 칼날이

내 사랑을 비치다


소나무 대나무는

천고에 푸르르나

삼월달 홍도(紅挑)야

한때가 아니런가


옛날 왕소군(王昭君)도

북쪽 땅에 묻히고

천하 미인 양귀비(楊貴妃)도

마외역에서 죽었나니


사람이 본래

목석이 아니어든

오늘밤 그대여

정을 아끼지 말라


사람의 일평생이 길지 않으니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는 말이다. 난들댁은 별쭝이가 읊어대는 시를

음미하며 한결 부드러워졌다. 별쭝이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 칼을 내려놓고 눈을 내리 깔았다.

별쭝이가 살며시 다가왔다. 그런데 난들댁은 몸을 허락하는 듯 하더니 또다시 갑자기 밀쳐냈다. 난들댁의 

한 마디가 별쭝이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왠지 돼지 냄새가 나서 싫어요. 가까이 오지 말았으면 해요."

이 말을 들고 별쭝이는 기분이 팍 내려 앉았다. 왠지 자신의 모습이 발정난 돼지 같았다. 난들댁이 들었던

칼에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비쳤다.

그런 이유로 별쭝이는 많은 돈을 벌게 해준 돼지나 가축을 멀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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