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친구 A와 B

헤스톤 2016. 5. 9. 10:46

 

 

약 40년 전에도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당시에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으로 학생들한테 인기가 대단하였다. 인터넷은커녕 TV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라디오의 청취율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라디오 연속극보다도 이 프로그램은 젊은 층

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 엄청 많은 양의 편지가 오기 때문에 방송을 통하여 나오는 글은 대단히 뛰어나야

함은 물론이고 운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곳에 친구 A가 어느 날 시(詩)를 써서 보냈고, 시의

내용이 방송을 통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시의 제목을 구한다고 하였다. 그 후에 그 시의 제목으로 이런

것이 어떻겠느냐며 방송에서 나왔고, 그 시의 제목을 써서 방송국에 보낸 어떤 여자와 친구 A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인기가 높은 방송을 통하여 남자가 시를 썼고 여자가 제목을 붙여서 인연을 맺게된 것이다. 전화사용도

많지 않던 시절에 둘이 주고받은 편지가 날이 갈수록 얼마나 달콤했을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당시 나는

라디오도 없어서 방송으로 흘러 나온 내용을 듣지도 못했고, 그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귀었다는

것도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그냥 친구 A를 생각하면 울적해진다. 그는 고향에서 나의 앞집에 살았었는데 그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했다는 것외에 키가 작았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작았고 그집

자식들 대부분 작았는데 그냥 조금 작은 정도가 아니라 학교에서는 언제나 1번이었다. 이런 이유로 나보다

한살 더 많지만 고향의 초등학교로는 나의 1년 후배이다. 만약 내가 도시의 중학교 시험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창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향에서 약 6Km 떨어져 있는

읍내의 중학교에 다녔는데, 그 때도 언제나 1번으로 공부도 전교 1등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신체적

핸디캡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일류고등학교에는 순전히 체력장 때문에 낙방을 하였다. 체력장에서

받은 점수가 이미 커트라인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동창이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였다. 성적은 언제나 전교에서 상위 1~2%이내에 있었다. 나보다 

등수가 아래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대학교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였고 법학을 전공하였다.

그의 집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큰 탓으로 재정적 뒷받침도 잘 해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부러웠던것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작은 키로 군대에 대한 고민없이 계속 학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정말 고시공부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건을 말하려면 친구 B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나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당시 나와 제일 가깝게 지냈

으며 리더십도 뛰어났다. 친구 B를 생각하면 더 울적해진다.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

하지 못하며 살아왔지만 B는 더 그런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반장을 계속

하였고 공부도 언제나 1등을 하였다. 6학년때는 전교 회장을 하였다. 그렇지만 도시에 있는 일류중학교

시험에 실패하여 나처럼 재수를 하였다. 나와 다른 점은 재수를 하여 그는 일류중학교에 입학하였고 나는

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도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성적은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여하튼 친구 A와 B 그리고 나는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 된 것이다. B는

이과(理科)이었기 때문에 같은 대학교의 공대에 입학하였다. 그렇지만 글도 잘 쓰고 신체적 조건이 좋았다. 

얼굴도 잘 생겨서 동창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었다. 서예나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A보다는 B와 지낸 시간이 더 많은 탓도 있고, 조금 더 가까웠던 탓으로 사건(?)에 대한 말들은 주로 B를

통하여 알게된 것이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통하여 알게 된 A와 여자가 언제까지 편지만 주고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서로 호감을 갖게 되면서 여자측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작은 키라는 신체적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A는 고민이 되었다. 만남을 가지게 되면 여자쪽에서 크게 실망을 할 것이고, 다시는 편지를 주고

받는 설렘이나 희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다. 차일피일 미루다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도저히

나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A는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던 B에게 네가 나인 것처럼 하고 그 여자를 만나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물론 그동안 주고받았던 편지내용 등도 알려주었다. B가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A는

숨어서 둘의 데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B와 여자가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A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가 B가 여자를 가로챌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A는 솔직하게 고백

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그동안의 자초지종과 오해를 풀기 위하여 A와 B가 여자와 함께 만났다. 그렇

지만 이미 여자는 많이 돌아선 다음이었다. 돌아선 여자의 마음을 돌리기엔 늦었던 모양이다.

 

이로인해 A는 B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었고 , B는 A가 자기를 오해한다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여자와 헤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실연을 당한 A가 공부도 하지 않고 술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고시공부하고도 거리가 멀어졌다. 정말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너무 어렸웠던

것 같다. 매우 힘들어 하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장래가 촉망되던 A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뒤 결혼생활도 순탄치 못하고 일찍 혼자가 됐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B도 이 사건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이 사건이 이들에게는 젊은 날의 축복이 아니었다. 멀리

떠나간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A가  좀 더 자기수준에 맞는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한다. B도 짧은 직장생활 이후에 자기 사업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정

으로도 힘든 시절을 보냈다.

물론 나도 고향에서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생활을 하여 왔지만 이들은 더 그런 것 같아 씁쓸하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실력을 생각하면 이 사건이 이들의 미래에 어떤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누구나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야 된다는 아버지 말씀이 떠오르는 하루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여행  (0) 2016.06.09
남의 우산을 보며  (0) 2016.06.03
남을 웃기면 자신도 즐겁다  (0) 2016.03.24
3일간의 행복(하)  (0) 2016.03.07
3일간의 행복(중)  (0) 201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