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남의 우산을 보며

헤스톤 2016. 6. 3. 14:17

 

 

비가 오면 빗방울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챙겨야 할 우산을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우산을 쓸 일이 별로 없다. 대개 차를 주차시키는 곳이 지하로 아파트나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로 지하에 가서 차를 몰고 회사 지하실에 주차한 다음

사무실로 올라간다. 일을 본 다음 퇴근할 때는 반대로 한다. 우산을 쓸 일이 없다. 외근을 할 때가 아니면

비가 아무리 와도 우산이 필요없다.

옛날에 비해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된 우산인데 집에 우산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우산을 소품으로 여기저기서 받은 탓이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이나 친척 집에 가 보아도 우산들이

많다. 그냥 포장을 뜯지 않은 우산들이 쌓여 있다. 고교시절 집에 우산이 없어서 학교에 갈 때 비를 맞고

간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변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우산이란 것은 꼭 필요할 때는 없다. 집에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밖에서 비가 올 때는 손에 우산이 없다. 그래서 투덜거리며 우산을 또 사기도 한다. 

 

 

은행에 다닐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가 우산과 관련된 말이었다. "비가 올 때 우산을 뺏는 곳이

은행"이라는 말로 듣기 거북한 말들이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렇게 우산을 가져가라고 하더니 막상

비가 오면 왜 뺏어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맞는 말은 아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미리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의 푸념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가 올 때 은행이

우산을 뺏지도 않을 뿐더러 뺏으려 해도 뺏길 기업도 없다. 다만 햇볕이 날 때 우산을 빌려준다고 하다가

비가 오면 우산을 빌려주지 못하거나 빌려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행이라는 곳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곳에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산이란 것은 비가 오기전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

이다. 평소에는 아무 준비도 없다가 비가 올 때 꼭 남의 우산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이 있는데, 은행에 대한

불평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 한다. 우산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은행 탓이나 남 탓을 하기전에 자신부터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사려고 하면 비싸기도 하지만 우산파는 곳을 아예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산을 생각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자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잃어버린 우산은 수십개가

넘을 것이다. 우선 가장 기분 나쁜 것은 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가져 가는 사람들로 인한 것이다.

관공서나 식당같은 곳에서 자기 우산도 아닌 것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왜 그런 일이 있는

일까? 대개 새 것일 때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 우산은 언제나 새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우산을 자기 우산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식사

하고 나올 때 몇 번 경험을 하였다. 무엇보다 비슷하거나 상태가 아주 안 좋은 우산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식당만 가면 나의 신발이나 우산을 누가 가져 가거나 바꿔 가지고 간다.

아무래도 내가 물건을 정성스럽게 그리고 아주 깨끗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눈독을 들이는 모양이다.

심지어 어떤 인간은 자기 우산에 자기 아들 이름까지 써 놓고는 비슷한 모양의 내 우산으로 바꿔쓰고 간

경우도 있었다. 무늬만 비슷했을 뿐 상태가 아주 좋지 못한 우산을 남겨 놓고 바꿔 쓰고 간 것이었다. 무엇

보다 내 우산이 새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뀌지 않도록 나름대로 표시를 해 놓는데도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올 때 보면 없어지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은행에 갔다가 볼 일을 보고 우산 놓은 곳에 가 보니 내 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데 어느 것이 내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참 망설이다가 좀 더 괜찮아 보이는 것이

내 것이라 여기고 가져왔다. 왜냐하면 그 우산은 집사람이 주로 쓰던 것이라 무슨 표시가 없는 탓도 있지만

당연히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내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이것이 우리 우산이  맞느

냐고 하니 집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언제나 정확하다고 자부하던 나이기에 그날 얼마나 나를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한치의 실수나 흐트러짐도 없이 생활한다는 나의

칼같은 자세가 상처를 입었다. 바꿔가지고 갔을 그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의 학창시절 별명은 "나이프 박"이었다. 얼마나 칼같이 생활했으면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 한 가지만 소개

하면 이런 것이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때 여고 2년생인 어느 부잣집 딸에게 과외지도를 하였다. 당시

월 2만원을 받았는데 40여년 전으로 당시 국립대 등록금이 10만원 정도 이었으니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군대 제대후 대학교 3학년때에는 남자 중학생들(7~8명)을 상대로 가르쳤는데 약 3만원의 수입이 있었으니

당시 한 명을 과외하는 금액으로 적은 금액이라기 보다는 꽤 괜찮은 금액이었다. 그 여학생을 상대로 하루

2시간씩 지도를 하였는데 나는 정확한 시간에 그 집에 도착하여 정확하게 2시간을 하고 갔다. 1초도 지각한

날이 없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그 집앞을 서성이다가 정시에 딱 맞춰서 들어갔다. 그 집에서는 나를

'정확한 시계'라고 하면서 '칼'같다고 했다.

이처럼 칼같은 내가 실수를 하고 보니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어 남의 우산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사진은 나의 친구로 사진작가인 말러 임성환님의 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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