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꾸라지를 잡은 날

헤스톤 2015. 9. 22. 12:41

 

버들치나 피라미를 잡으러 갔다가 미꾸라지를 잡았다. 동네 분위기를 흐리는 미꾸라지같은 놈을 잡은 것이 아니

진짜 미꾸라지를 잡았다. 그것도 상당히 큰 것들이다. 사실 미꾸라지를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맑은 물 속에 피라미나 중고기(중태미)가 보이길래 어항을 놓고 기다렸지만 주변만 맴돌 뿐 안에 들어가질 않는

다. 상당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어항에는 들어가질 않으니 맥도 빠지고 날도 어두워져서 떡밥

잔뜩 어항속에 넣고 다음날 새벽에 건지러 나갔다. 그랬더니 보이지도 않던 커다란 미꾸라지들이 들어가 있

었던 것이다. 김장독 밑에 놓을 돌덩이 주으러 나갔다가 수석을 주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어항을 들어 올릴 때

꼬물꼬물거리미꾸라지들의 묵직함과 손에 전해오는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나는 내가 이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다. 어항을 이용하여 잡은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고기잡는 재주가 있다

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감탄하고 있다. 사실 나는 잡기(雜技)하고는 거리가 멀다. 잘 하는 것이 없다. 고스톱을

쳐도 따는 경우보다 잃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시골에서 풀을 베거나 잡초 뽑는 것도 남들보다 잘 못하고, 비석

기나 말뚝박기 같은 놀이에서도 잘 해본 기억이 없다. 물론 평균 이상으로 하는 것도 여러 개 있지만, 특출

것은 아예 없고 대부분 실력이 되질 않는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나 직장에서 동료들과 물고기 잡으러 가면

가 잡아서 튀겨주거끓여준 것을 먹을 줄만 알았지 내가 잡거나 손질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종 쓰레기 치우는 것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정도이었다. 그런데 내가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

이다. 




사실 이번에도 물고기를 잡으려고 내가 먼저 나선 것은 아니다. 집사람이 자기 친구하고 물고기를 잡겠다고 나

는데 몇 번 물고기들한테 농락만 당했다고 해서 내가 나서게 된 것 뿐이다. 물고기를 못 잡는 가장 큰 이유가

떡밥에 있다고 보고 나는 다른 종류의 떡밥을 샀을 뿐이다. 

지난 여름  집 근처에 있는 묘적사 계곡에 놀러 갔을 때 물고기들이 많이 보였다. 우선 물이 깨끗한 곳이라 좋았

다.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버들치와 중고기(중태미)가 여기저기 보이는 것을 보고 집사람과 집사람 친구는 어항

가지고 몇 번 갔었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상당량의 중고기를 잡았지만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것들이기에 어쩔

없이 아래 쪽으로 내려 오다 보니 한강으로 흘러 들어 가기 전의 월문천까지 내려 오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계속 물고기들한테 농락만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떡밥을 갖고 내가 나서게 되었고 엉뚱하게 미꾸라지

를 잡게 된 것이다. 



한 번 잡고 보니 재미가 있다. 어항을 들어 올릴 때 파닥파닥 뛰는 중고기도 있고 커다란 민물게가 들어가기도

한다. 저녁 늦게 어항을 놓았다가 새벽에 건지는 방식으로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여러 번 미꾸라지를

잡았다. 다슬기가 멍청하게 어항 속으로 들어 와 있을 때도 있었다. 나의 고향에서는 '다슬기'를 '도슬비'라고 불

렀던 것 같은데 맑은 물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하튼 어항에는 눈으로 보였던 피라미나 중고기도 큰 것

들이 몇 마리 들어 오긴 했지만 주로 미꾸라지와 메기 비슷한 것들이 들어가 있었다. 집사람은 이제 나의 직업을

적을 때 "어부"라고 적으라고 한다. 앞으로 돈도 안 되는 시(詩) 낚는다고 여기저기 산책 다니지 말고 고기나 낚

으라고 한다. 사실 나에게 잡힌 놈들은 수 옴 붙은 놈들다. 아무 재주도 없는 나에게 잡혔으니 말이다. 무엇

보다 맛이 좋다. 아주 자연산으로 살이 통통하다. 역시 물고도 힘이 좋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일수록 맛이

더 나는 것 같다.



피라미나 중고기는 잡은 후 하루도 못 가 죽는다. 그렇지만 조금 더러운 물인 3급수에서도 살 수 있는 마꾸라지,

메기, 붕어는 잡힌 후에도 오래 산다. 적응력이 강한 종들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한다. 

버들치 같은 것은 1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 어쩌면 사람도 1급수 사회가 아니면 살기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아주 맑은 그런 사회는 없었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내가 직장

생활을 처음 할 때 보다는 우리의 하천들이 많이 맑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가 맑아지길 희망하지만

제 어디서나 흙탕물을 만드는 미꾸라지 같은 놈들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만약 이 사회가 계속 1급수를

유지해 나간다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회 탓이나 누구 탓을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잘

적응할 줄 알고 질긴 생명력을 기를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이 사회가 좀 더 맑아지고 따뜻해지는데 일조하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피라미처럼 성질이 급하면 빨리 죽는다. 나무도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잎을 떨구

빈 몸으로 서 있다. 좀 더 느긋해야 한다. 비슷하게 태어 난 친구들보다 오래 살을 필요는 없지만 보조는 맞춰야

한다. 너무 늦게 가는 것을 바라진 않지만 너무 일찍 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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