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남사

헤스톤 2015. 6. 12. 10:09

 

덩치가 큰 SUV 차량이 갑자기 앞을 가로막더니 내 차를 세우라고 손짓하며 갓길로 인도한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처음에는 내 차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브레이크 등이 안 들어온다

거나 펑크가 난 것이 아닌가 하여 차를 세웠더니 그 운전자는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한테 다가온다.

" 아까 왜 내 앞으로 끼어들었습니까?"

정말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클랙슨 소리를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차 앞으로 끼어들은 기억도 없고, 끼어

들었다고 해도 그만한 여유가 있다고 판단해서 끼어들은 것일텐데 어이가 없다. 그리고 설사 앞으로 끼어들었

다고 하더라도 속력을 내어 내 앞을 갑자기 가로막고 차를 세우게 하다니. 자칫 잘못하면 접촉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할까를 잠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착해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냉정을

잃으면 안된다.

"왜 내가 끼어들었나요. 난 기억도 안 납니다. 그래서 기분 나쁘셨나요?" 평소의 단정(?)한 모습 그대로 당황

하는 기색없이 말을 하니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내가 상향등까지 켰는데도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분이 안풀리는지 씩씩거린다. 상향등을 켰으니

당연히 들어오지 말았어야 된다는 것일까. 마음먹은 대로 달리지 못해서 기분 나쁜 것일까. 아니면 자기

앞으로 작은 차가 끼니까 기분 나빴단 말인가. 여기에서 나도 목소리를 높이면 싸움이 된다.

살면서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겠지만 사소한 것 같고 확대시키고 싶진 않다. 옆 차선으로 들어갈 때는 도로가

텅 빈 곳에서도 꼭 방향지시등을 켜고 들어가는 나의 평소 운전습관을 떠올렸다.  

"그럼 내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들어갔나요?" 나는 내리지 않고 말하였다. 괜히 내리면 싸움이 안 될 것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침착한 반응에 톤이 조금 내려간다.

"그것은 아니지만 비상 깜박이이라도 켜 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조금 그의 인상이 펴지고 있는 이쯤에서 쐐기를 박는 말로 종결을 시켜야 된다.

"내가 옆에서 오는 차를 잘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그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선다. 그냥 보내려니까 찜찜하다.

"잠깐만요. 오늘 아침 기분 나쁜 것은 지우고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마치 신부님이라도

된 것처럼 돌아서는 그의 등뒤에 성호를 그어 주었다.

 

이날 따라 차를 몰고 나오면서 "내남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평소대로라면 성호를 긋고 "내남사"를 하는데

이날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신(神)은 정말 귀신같다. 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남사"는 "내차, 남의

차, 사람"의 준말이다.

먼저 성호를 긋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우선 내 차에 아무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다가 바퀴에 무슨

제가 발생하는 것을 포함하여 아무 고장없이 가기를 빈다. 다음으로  내 차 주변의 남의 차들도 아무 문제

없이 가기를 빈다. 나만 운전을 잘한다고 아무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차가 내 차와 부딪치거

시빗거리가 생길만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이다. 사람은 제일 중요하다.

걸어가는 사람을 비롯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설사 차끼리 부딪치는 일이 있더라도

사람 몸에 해가 되는 것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며칠전 아파트 주변의 한적한 도로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거의 도로 중앙 근처까지 나와서 발을 쭉 뻗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다. 일부러 사고를 유발하려고 나온 사람이다. 마치 내 다리 하나 잘라달라는

식이다. 어쩌면 생을 마감하려고 작정한 사람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디 가서 혼자 죽는 것도 아니고 왜 남의

차에 깔려서 죽으려고 하는지 참으로 이상한 인간이다. 내가 운전이 미숙한 사람도 아니고 동네에서 속도를

크게 높이지도 않았기에 피해갈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신고하여 처리하도록 하였다. 며칠전의 일도 있고 하여 오늘은 "내남사"를 정성스럽게 말하면서 성호를 

으며 차분한 마음을 가져 본다.

 

저쪽 세상으로 가는 길을

두르지 않아도 될

내 차, 남의 차, 사람들이

먼저 가겠다고 아우성이다

좀 더 천천히 가도 된다고

리 가서 좋을 것 하나 없다고

여름 한철 넘기기도 힘든

장의 장미들이 웃는다

바람은 어떤지 몰라도

남사 모두 

가시에 한 번쯤 찔려봐야

여유를 그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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