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은 참으로 높고 아름답다. 저 하늘을 톡톡 두드리면 천사가 미소지으며 파란 문을 살며시 열고 나올 것
만 같다. 만약 맑고 고운 저곳에 시를 쓸 수 있다면 아무렇게 써 놓아도 좋은 시가 될지도 모른다. 하늘을 바라보
고 있노라니 가을 냄새가 온 몸을 감싼다. 시인이 되려고 꿈도 꾸지 않았던 아주 오래전에 끄적거렸던 나의 글이
떠오른다.
가을이 되면 시인이 된다
박 형 순
가을이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맑고 푸른 하늘은
생각의 격조를 높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단풍들로
수많은 언어들이 난무한다
연한 구름들의 재롱잔치에
낙엽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며
온 세상을 간지럽히니
작은 웃음부터 가가대소까지
온 세상이 즐겁다
가을이 깊어지면 시인이 된다
생명이 없는 것도 시인이 된다
도시의 가을도 아름답지만 시골의 가을은 더 아름답다. 가을 햇볕의 은총 아래 들판의 모든 것들이 익어 간다.
벼나 옥수수가 익어 가고 과일도 익어 간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니 그리움도 탱탱하게 익어 가지만 슬픔도
익어 간다. 시인들의 사랑도 익어 가고 가을을 노래하는 글들도 익어 간다.
그런데 나 자신만 익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나 자신을 익게 하는 방법으로는 독서나 명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렇게 좋은 날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계절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높고
푸른 원고지에 시는 쓰지못한다 하더라도 가을에 푹 젖고 싶어 오래간만에 등산화 끈을 매었다.
예봉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보니 역시 모든 것은 하늘 아래 있다. 그렇게 높이를 자랑하던 빌딩들도 겸손한 모습
으로 서 있고 한강물도 조용히 흐른다. 여름날 서로 누가 빨리 자라고 파란 색깔인가를 놓고 내기를 하며 흔들어
대던 잎들도 조용하다. 맑은 하늘에서 양떼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는 풀벌레도 잠시 노래를 멈추고
새들도 울음을 그친다. 아직도 낮에는 여기저기 풀 냄새를 풍기면서 여름이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지만
하늘을 거역할 수는 없다. 아무리 여름 고집이 세다고 해도 매년 싸움에서 여름이 가을을 이겨본 적이 없다.
내가 자주 산책하던 금대산이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 어쩜 저렇게 엎드려 있는지 모르겠다. 숨도 쉬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저곳으로 빨리 달려가서 등을 토닥거려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산을 내려 오면서 내 멋대로 읊어 본다. "하늘보고 웃다보면 사랑노래 들려온다. 구름보고 눈짓하면 희망모습
그려진다. 가을 햇볕에 검게 탄 농부의 얼굴에서 고추가 빨갛게 익어 간다. 흰 수건을 두른 아낙네의 이마에서
계절이 지나간다." 조금은 그럴 듯 하다고 스스로 감탄하며 아무 곡이나 붙여 흥얼거리니 산까치들이 빤히 쳐다
보다가 가을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주로 산책하는 금대산(金垈山)은 90.6m 높이의 아주 낮은 산이다. 그런데 이 낮은 산에도 새들이 지저귀고
들꽃도 핀다. 무엇보다 조그만 계곡이나 음지도 있다. 햇볕과 거리가 먼 음지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을 보노라면
왠지 슬프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볼품없이 자란 식물들이 꼭 나와 닮은 것 같다. 물론 음지에서만 살았다
고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더 힘들게 살았을 누군가의 눈으로 볼 때는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자꾸만 과거의 시간들로 들어가서 가슴을 후벼 팔 필요가 없다. 힘들었던 삶도 즐겁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이곳이 봄이었을 때는 복수초나 노루귀도 피었다. 이젠 가을이 되었다고 다른 들꽃들이 방긋 웃고 있다. 모두가
겸손하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나도 나의 운명을 사랑하면서 이 가을엔 많이
익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의 봄은 참으로 더디게 오더니 가을은 빨리 오는 것 같다. 아마 겨울은 더 빨리 올 것
같다.
금대산 밑의 월문천을 따라 한강 근처에 다다르면 아주 조그만 생태공원이 있는데 '구절초'라는 팻말이 보인다.
그런데 꽃은 보이지 않고 잡풀만 보인다. 작년만 해도 구절초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는데, 올해는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다. 꽃도 그렇고 사람도 관리를 계속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내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구절초라고 시나 수필을 발표하면서 맨 잡풀만 늘어 놓은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본다.
이곳엔 나무로 만든 잠자리 모형들도 있는데 성한 것이 별로 없다. 한쪽 날개나 두쪽 날개 모두가 사라진 것들도
보인다. 진짜 고추잠자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무엇이든지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코스모스는 여기저기 피어 있다. 작년에 피지 않았던 곳에서도 피어 있다. 역시 코스모스를 빼고 가을을
노래할 수는 없다. 나의 기분 탓이겠지만 어렸을 때 코스모스는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자세를 한껏 낮췄는데
요즘 코스모스는 키가 크다. 늘씬한 다리를 자랑한다. 예전 코스모스는 어쩌다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지으며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리곤 했는데 요즘 코스모스는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을 바짝 쳐들고 자기 좀 봐 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 어쩜 나의 시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골 냄새가 나는 글을 쓰던 도시풍의 글을 쓰던 과거보다는 좀 더 익은 글을 쓰도록 해야 하는데 오래전 나의
일기장에 있는 글을 볼 때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어렸을 때가 지금보다 더 순수
하고 힘이 있었던 것 같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되어야 한다.
올 가을엔 벼가 고개를 숙이며 익어 가듯이 나도 익고 싶다. 아주 잘 익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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